월세 임대시장을
건전하게 활성화 시키는
제도적 틀이 필요하고
임차인 보호할 수 있는
장치도 반드시 마련해야
전세는 우리나라 주택시장의 특성을 반영하는 독특한 임대방식 중의 하나로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운 제도다. 최근 부동산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매매수요는 급감한 반면 전세수요는 급증한 탓에 전셋값이 폭등하는 등 전세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본격적인 이사철이 다가오면 그 파장은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해서 시급한 대책마련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주택의 자산가치가 중시되고 인플레이션 되는 시대에는 전세만큼 유용한 제도가 없다. 대부분의 무주택자들은 전세를 거쳐서 종국에 집을 장만하는 일종의 징검다리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전세금을 올려가며 목돈을 불리고 때가 되면 거기에 대출금을 얹어 집을 장만하는 것이 서민들의 집장만 공식이었다. 서민들이 집을 장만한다는 것은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하나의 표증이며 삶의 희망이기도 하다. 만약 집을 장만할 의사가 없거나 소유를 포기한 사람에게는 전세를 사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세시장은 전세를 놓는 공급자와 전세를 사는 수요자의 관계에서 형성된다. 공급자는 크게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는 다주택자와 집을 사고도 집값을 다 지불하지 못한 미입주자로 구분된다.
다주택자는 본인이 살고 있는 집을 제외한 다른 집들을 어차피 임대를 놓아야 하는 입장인데, 최근의 저금리와 중과세 등의 영향으로 목돈을 받는 전세보다는 매월 임대료를 받는 월세를 선호한다. 전세금을 받아야 마땅히 굴릴 데도 없고 늘어난 납세 등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입주자의 경우는 최근 그 숫자가 현저하게 줄었다. 몇 년째 계속되는 부동산시장의 침체로 매매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주택의 자산가치가 하락하고 그 끝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누가 대출금의 부담을 떠안고 집을 사려고 하겠는가? 주택의 자산가치가 디플레이션 되는 상황에서는 전세제도가 갖는 의미는 퇴색되게 마련이다.
전세시장이 작동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시중금리가 높아야 하고 집값은 지속적으로 올라야 한다. 그래야만 전세를 놓으려는 공급자들이 생겨난다. 집값이 오르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은 집을 자산으로 인정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는 매년 지속적으로 오르는데 집값은 왜 오르면 안 되는 것인가? 경제는 곧 심리라는 말이 있다. 시장에서는 어떤 물건을 구매해서 소비하는 수요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자산가치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을 때 비로소 소비자들은 구매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목돈이 필요해서 금융기관의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것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집값은 폭등과 폭락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지속적으로 적정하게 상승해가는 것이 맞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조만간 전세제도는 사라지고 역사적인 유물로 남게 될 것이다. 전세제도가 종말을 고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선진국과 같이 월세 임대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민들의 주거안정은 크게 위협을 받게 될 것이고 서민들의 집장만은 더욱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월세 임대시장을 건전하게 육성시키고 안정화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정부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민간 임대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 시급하게는 임차인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부동산정책과 제도가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쟁의 대상이 되어 표류해서는 곤란하다. 상황은 급속하게 나빠지고 있는데 정치적 공방으로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단기 처방에 대해서는 야당의 주장을, 중장기 처방에 대해서는 정부 여당의 주장을 담아내는 큰 틀에서의 대타협이 있어야 한다. 또한 민생과 직결되는 부동산정책과 제도에 대해서는 시장상황을 반영할 수 있는 탄력적인 제도와 정책운영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국회에 과하게 집중되어 있는 정책과 제도의 결정 권한을 책임을 지고 일을 추진해 나가도록 행정부와 지자체에 대폭 이양해주는 것도 필요할 듯싶다.
/서충원 강남대 교수·산학협력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