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전쟁 끝날 기미 안보여
국민들 민생현안 승부 원해
장외로 나간 민주 국회 복귀
과거와의 숨바꼭질에
더이상 시간 허비 말아야
얼마 전 법조계의 존경을 받던 한 대법관이 퇴임했다. 대형 로펌으로 갈 것이란 예상을 깨고 부인이 운영하던 야채가게 도우미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국민들은 그의 결정에 박수를 보냈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마저 존경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대형 로펌으로 가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가 노심초사 내놓은 결심의 배경은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었다. 먹고 사는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마음이 안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존경했던 대법관의 변심에 몹시 서운했지만 맹자의 말씀을 되새기며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처럼 국민이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먹고 사는 문제가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각 정당의 후보들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온갖 사탕발림을 다했다. 만약에 국민이 원한다면 별도 달도 따줄 것처럼 아양을 떨었다. 치열했던 '대선 전쟁' 드라마는 지금쯤 당연히 끝났어야 하지만 '대선 진실 게임'이라는 지루한 드라마로 변질되어 있었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다.
대선 과정을 돌이켜보면 민감한 이슈들이 많았다. NLL대화록 논란,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의혹 등이 그렇다. 사실 어느 쪽 주장이 진실에 더 가까운지 알기 쉽지 않다. 각 정당은 내 주장이 진실이고 상대방은 '국기문란'이라고 하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둘 다 크게 달라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라는 '파워 게임'의 결과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 매우 어렵다. 승자는 패자를 다독이고 패자는 재기를 노려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대한민국의 전부가 될 수 없듯 국민들을 위한 민생공약 실천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
대통령 임기 6개월이 되는 시점에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는 국민의 여론을 살펴보았다(전국 1천명 유무선 RDD 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대해서 국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이 국민 10명 중 7명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국회복귀 의견이 더 많았다. 민주당 지지층의 응답은 민주당의 주장이 틀렸다고 국회로 복귀하라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있어야 할 자리는 분명 장외가 아니라 국회이므로 민생현안 대결로 승부를 보라는 당부인 것이다. 새누리당과 정부도 국민들의 비판을 비켜갈 수 없다. 같은 조사에서 대선 공약 중 재정부담이 되는 정책에 대해 반이 넘는 55%가 수정하거나 철회해도 된다고 답변했다. 국민들은 무리한 공약 이행보다는 할 수 있는 공약을 가능한 예산범위 내에서 제대로 해주기를 원하고 있다. 공약 실천을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해 엉성한 세제 개편안을 들고 나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 더욱이 국민을 '거위'에 비교하는 무책임한 생각이야말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국민들의 여론은 한결같다. 시시비비는 가려야 하지만 민생현안을 챙겨야 할 많은 시간을 '과거와의 숨바꼭질'에 허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국회 안에서의 투쟁, 장외투쟁, 철야투쟁 등 수많은 정치인들의 투쟁이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국민을 위한 투쟁으로 와 닿는 것이 없다. 오죽했으면 일부 조사에서는 이례적으로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여론이 40%에 육박했을까. 의원들의 세비뿐만 아니라 정당 운영을 위한 교부금도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뿐이다. 이렇게 하고도 2016년 총선에서 다시 전국을 돌며 한 표를 달라고 할 염치가 있을지 모르겠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신예 빌 클린턴 후보는 예상을 깨고 조지 H 부시 현역 대통령을 이겼다. 부시 대통령은 걸프 전쟁에 몰두하며 경제난에 내몰린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클린턴 후보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외치며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지금 정치를 보면 새누리당은 대통령만 바라보고, 민주당은 친노만 바라보고, 통합진보당은 북한만 바라보는 꼴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소리치지만 정작 국민을 바라보지도 않는 것이다. 단언컨대, 국민들은 '무항산 무항심'의 심정으로 분노하고 있다. '문제는 정치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