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정부가 인문학에 대해 더이상
관심과 지원을 안할때를 대비
현재 인문학 르네상스의
좋은 기회를 살려야 하고
이제부터라도 주변의 이웃과
사회문제에 적극 관심 가져야


올 가을에도 어김없이 인문학의 향연이 펼쳐진다. 교육부는 2013년 시민인문강좌지원사업에 15억원의 예산으로 57개 과제를 선정하여 9월부터 전국 도시에서 시민과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 속에는 10월 29일부터 일주일 동안의 '인문주간' 행사도 포함된다. 또한 3회째를 맞이하는 세계인문학포럼(WHF)이 광역자치단체를 중심으로 10월에 예정되어 있다. 이 모든 인문학의 잔치는 인문학이 대학 밖으로 나와 시민들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인문학 대중화'의 일환으로 기획되어 있다.

인문학 대중화는 지방 정부의 중요한 사업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수원시의 경우 '인문도시 수원' 만들기 사업이 지자체 차원에서 2년간 이어져 왔고 내년에도 계속된다. 경기평생교육진흥원의 노숙인 인문교양교육사업과 같이 소외계층 대상의 인문학지원사업을 통해 인문교육의 질적 다양성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가 인문학에 대해 갖는 관심, 그에 따른 인성교육의 강화는 우리사회가 인문학을 보는 관심이나 열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때 인문학이 천대받던 시절, 목소리를 높이며 인문학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요청하던 때가 있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과히 인문학 천국의 문에 와 있다고나 할까, 대략 그런 분위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속내를 들여다보면 단순히 평화롭지 만은 않다. 경쟁 사회이다 보니 대학들마다 정부나 지자체의 인문학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바삐 움직이며 선정 시기에는 희비가 엇갈린다. 선의의 경쟁이긴 해도 인문학 교수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인문학 교수들이 과제를 얻어내기 위해 싸우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남들이 인문학을 알아주기만을 기다리는 자세에서 벗어난 그 자체로 인문학은 반쯤 성공했다.

그럼에도 대학 내에서의 인문학은 정부나 지자체가 원하는 만큼 활발하고 역동적이지 못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인문학에 대한 세상의 요구만큼이나 인문학을 비실용적인 학문으로 굴레지어 문학, 역사, 철학 관련 학과들이 폐지되고 인문교양과목은 배경 저편으로 밀려나고 있다. 정부도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한쪽으로는 이런 학과들에 취업률을 높이라고 닦달한다. 이 모순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문학의 잔치를 꾸려나갈 대학 자신이 흥이 나지 않고 쉽게 불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잘못은 대학 스스로 인문학에 대한 자신감, 의욕 부족과 동기화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대중적 영향력과 효과에 대한 확신감 부족이며 대학이 직접 챙겨야 할 주도권을 정부나 지자체에 빼앗긴 탓이라고 본다. 인문학 최고의 정신이 자율인데 그 자율성이 관제의 힘에 의해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아마 대학들은 인문학을 자생적으로 키우지 못했다는 열등의식과 관 중심으로 끌려가는 인문학에 자존심을 상했는지도 모른다.

정부가 더 이상 인문학에 관심이나 지원을 하지 않는 시기가 언젠가는 올 것이다. 대학 스스로가 인문학을 학대하는 분위기에서 언제까지 밖에서 열정을 갖고 인문학에 지원을 해주겠는가. 대단히 역설적인 얘기일 수 있는데 대학들은 취업에 매달릴수록 인문교양교육을 더 강화해야 한다. 학생들 대부분은 졸업하는 순간부터 영원히 인문학을 들을 기회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나이가 들어 백화점 문화강좌를 기웃거리는 일을 미리 방지할 수 있으려면 인문학이 더욱 중요하다. 지금의 인문학 르네상스의 좋은 기회를 살려내야 하고 정부의 지원에만 목을 매달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대학은 사회의 갈등해결에 적극적으로 눈을 돌려야 하고 인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경쟁이나 싸움을 하지 않아도 좋았던 옛날의 그 게으르고 쓸쓸했던 '평화로운 인문학'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대학은 지금부터라도 주변의 이웃과 사회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인문학의 힘은 결국 대학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