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제에서 정치의 중심은 정당이라야 한다. 다양한 사회의 균열 구조와 갈등을 대표하고, 정권의 획득을 위해 합법적 공간에서 선거경쟁을 통해 승부하는 기제가 정당정치이며, 정당의 구성과 행동양식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게 짜여진 것이 정당체제이다. 그러나 대선 이후 집권당인 새누리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의 존재감은 국정원이 주도하는 정치환경속에서 여지없이 형해(形骸)화 되고 있다.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은 정치 부재의 종결자다. 정기국회 회기 중이지만 이석기 의원 제명 여부와 통진당 해산까지 여야 공방의 소재로 등장하면서 정치 실종은 좀처럼 치유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지난 달 말까지 결산 국회가 끝났어야 하나 공안 정국속에서 결산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분위기 파악이 안되는 '푼수'같아 보인다고나 할까.
이석기 의원이 구속되고, 통진당의 관련 인사들로 수사망도 확대되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이 사건 수사의 공조 형태를 띠고 있으나 수사의 중심이 국정원에서 검찰로 전환되어야 한다. 사안의 성격상 내사와 초기 공개 수사 단계에서 국정원의 수사는 불가피하며, 효율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석기 의원이 구속된 상황에서 국정원이 수사를 통해서 정치권의 전면에 노출되어 있는 모양새는 정국을 경직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대선 개입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정원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고, 3년 가까이 내사해 왔다던 내란음모사건을 국정원 개혁이 논의되는 시점에 공개수사로 전환한 것에 대한 의구심도 일리 있는 추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이석기 의원 등과 통진당이 한 목소리로 국정원의 수사결과를 날조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누리당은 이석기 의원 제명안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출했다. 민주당은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나 종북 논란에 휩싸일까 곤혹스러워 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통진당의 주장과 해명은 앞뒤가 맞지 않고, 믿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역시 검증은 되어야 할 대목이다.
내란음모 사건이 아무리 위중하다해도 적어도 최소한의 사법적 절차에 따라 정치적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 그러나 국정원이 계속 수사의 주도권을 쥐게 되면 공안 분위기는 불가피하게 강화될 수밖에 없으며, 국회에서도 이석기 의원 제명을 둘러싼 정치공방이 치열해지는 등 공안정국이 장기화 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정치가 공안에 가위 눌리는 형국을 의미하는 것이며 10월 재보선에서 색깔공세가 선거전략으로 등장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대화 단절의 출구전략을 모색하던 중 밝혀진 이석기 사건이 이미 블랙홀이 되어 있는 형국에서 이석기 의원 제명과 통진당 해산 등의 의제가 정치권의 메가톤급 정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국정원이 정치에 계속 노출된다면 국정원 개혁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다. 전격적인 내란음모사건 발표 등 국정원의 전광석화 같은 일련의 행동이 정략적이라는, 음모론적 시각의 해소는 국정원에 달려 있다. 이석기 사건은 더욱 치밀하고 강도 높게 수사가 진행되어야 하나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강도 높은 수사와는 별개로 국정원의 행보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