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은 둘로 나뉘어
극단적 대립이 춤을 추고…
모든 연출이 무대를 상당히
어지럽게 만들어 버렸기에
이젠 보듬어주는 연출 필요
연극이라는 예술이 탄생한 것은 대륙과 나라마다 차이가 나지만 대체로 기원전 5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연극경연대회를 시작으로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는 기원전 3세기쯤으로 축제의 성격을 띤 부여의 영고와,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띤 고구려의 동맹과 예의 무천, 마한의 시월제 등이 있다. 이때는 농경사회로 사회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고 의식주 모든 것을 하늘에 기대며 신을 섬기고 제사를 지내며 춤추며 노래 부르는 축제가 연극으로 발전하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연극 또한 희곡과 코러스 그리고 넓은 마당이 있으면 되는지라 연출의 기능이 발휘될 곳이 별로 없었고 연출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연극은 역사와 함께 지속적으로 발전하였고 19세기 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전기가 발명되고 대량 생산과 함께 사회의 중심이 왕이나 귀족 따위가 아니라 나와 가족, 우리라는 인간보편의 가치가 중심이 되어 한층 복잡한 양상을 이루게 된다. 이때 등장한 것이 연출이라는 기능이고 역할이며 직업으로서도 정식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비단 연극뿐 아니라 탄생한지 100년 조금 넘은 영화, TV 쇼 행사에서도 연출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연출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가? 연출을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공연 예술이나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희곡 또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연기, 장치, 의상, 조명, 소품, 음악 따위의 요소들을 종합하여 통일성과 독창성을 갖춘 메시지가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거나 또는 그 일을 맡은 사람을 연출이라 할 것이다. 작품의 주제 의식은 연출가의 연출을 통해서 드러난다. 연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이야기가 관객에게 전혀 다르게 비춰질 수도 있다. 필자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무대도 늘 누군가에게서 연출되어져 왔다.
내가 태어난 60년대에는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연출지시가 내려지고 배우인 국민들은 따르고 또 따르고 그러다 보니 배고픔은 조금씩 덜해지고 다른 게 보이기 시작한다. 자식들 교육시켜 너 잘 먹고 덤으로 나까지 먹여라 하며 엄청난 교육열이 무대를 장악하고 70년대까지 이어진다. 연출가는 이왕 시작 한 거 한 작품 더하길 원하고 강력한 연출을 이어나간다. 배우들은 불만이 있어도 표현하지 못하고 따라야 했다. 하지만 연출이 작품 막바지에 비극을 맞이하며 극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구세주를 기다리지만 배우들은 듣도 보도 못한 무대포의 연출자를 만나게 된다.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다치고 무대는 혼란스러우며 분장실은 가면을 썼다. 그렇게 80년이 시작되었다. 무대 위가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떤 의도이든 프로스포츠가 생겨나고 컬러TV가 세상을 뒤바꾸고 굵직한 세계적 스포츠 행사가 벌어졌다. 아이러니 한 것은 연출가가 강력하든 무소불위하든 우리의 무대는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고 배불러져 연출이 보이지 않아도 동선을 그런대로 만들고 있었다.
90년대에는 드디어 배우들이 좋은 연출을 선택할 권리가 생겼고 무대는 그야말로 수많은 장치들이 생겨나고 다양한 작품들을 마음대로 써내려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복잡성을 띠며 지금까지 다양한 연출을 배출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새로운 연출을 선택하였다. 막 이야기의 전개 단계이다. 전 연출이 무대를 상당히 어지럽게 만들어 버렸다. 경제는 침체이고 젊은이들은 머리 둘 곳이 없으며 사상은 둘로 나뉘어 극단적인 대립이 춤을 추고 있다. 이럴 때 연출의 기능과 역할이 절실하다. 그동안 수없이 연출을 공부해 온 연출에게는 더욱 지혜로운 그리고 따듯한 연출이 필요하다. 배우들은 힘들고 지쳐있다.
지친 배우들을 진정으로 따듯하게 보듬어 주고 얽힌 스태프들을 불러 지혜를 주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러면 각자의 위치에서 우리 배우들은 맡은 역을 잘할 것이다. 훌륭한 공연을 할 것이고 연출가는 후세에 가장 아름답게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연출이 배우들의 내적갈등과 스태프들의 싸움을 조정하지 못하고 연출의 스타일만 고집할 경우 배우들이 무대를 외면하고 무대를 내려갈 수도 있다. 다 같이 지혜로운 연출을 기대해본다.
/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