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재 논설위원
두 살기가 팍팍한 모양이다. 지난해 추석, 카톡을 가득 메웠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따위의 격려성 메시지가 올해는 반으로 푹 줄었다. 무엇보다 그만큼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다는 얘기도 된다. 내 코가 석자인데 남 걱정할 여유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정치? 그 신물 나는 정치가 하늘에서 뚝하고 스팸 선물세트를 떨어뜨려 주는 것도 아니고, 국정원 개혁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다. 이석기 내란음모? 그것도 채동욱에 묻혀서 긴장감도 크게 떨어졌다. 그러니 야당대표가 서울시청 앞에서 노숙을 하면서 대통령의 사과를 줄기차게 요구한들, 그게 그렇게 국민들의 가슴에 절절하게 와 닿을리 없다. 이말은 뒤집으면 민주당이 아직도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전히 지난 MB정부시절 광화문을 가득 메웠던 광우병 촛불시위대의 너울거리는 불빛에 취해 있는 것은 아닐까.

민주당이 '원내 복귀'를 선언했다. '국회선진화법'을 무기로 국회에서 전쟁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때를 놓쳤다. 만일 대통령과의 3자회담이 열렸던 그날, 수첩에 적어간 일곱가지의 요구사항이 단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대통령을 비난했던 그날, 차라리 "대통령의 사과를 받지 못해 국민들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로 국회로 복귀한다. 우리의 투쟁은 국정감사를 통해, 두 눈 부릅뜨고 정부를 감시하는 것으로 국회안에서 계속될 것이다"라며 국회로 돌아갔다면 국민들은 김한길 대표와 민주당을 다시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추석 연휴 내내 '한가위의 위력'을 새삼 느끼며 '민주당 재해석'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성숙한 야당의 정치의식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번에 100% 원내복귀가 아니라 장 내외 병행투쟁을 선택하면서 또다시 국민에게 감동을 줄 기회를 스스로 저버렸다. 마침내 민주당이 들어 온 국회가 어떤 모습일지 눈에 선하다.

누가 뭐래도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동안 국정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수권정당이었다. 그런데 지금 하는 행동들은 과거 야당들이 보여줬던 구태의연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면책 특권 뒤에 숨어 수준 이하의 막말의 성찬에 스스로 취하고, 심각한 균형감각의 결여로 국민의 신망을 얻기 어렵다. 국민들의 정치 안목이 꽤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된 것은 이정희 후보의 2차 TV토론에서 "나는 박근혜 대표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한 그 한마디였다. 만일 그 자리에서 문재인 후보가 나이를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어른의 입장에서 이 후보의 천박한 발언에 대해 호된 꾸지람을 했다면 대권의 방향은 지금과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번 이석기 의원 구속도 그렇다. 어찌됐건 그가 국회의원이 되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야권단일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국민에게 먼저 사과하는 게 도리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패배도 따지고 보면 국민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종북문제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10년, 이명박 박근혜 10년 이른바 '정권 10년 주기설'이 맞다면 다음 정권은 야당으로 넘어가는 게 순서다. 여·야가 서로 정권을 주고 받으며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도 나쁠 게 없다. 정당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권 창출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전략이 스스로의 반성없이 남의 트집만 잡는 지금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결코 정권을 잡을 수가 없다. 리얼미터가 지난 23일 발표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신당을 만든다고 가정할 경우의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새누리당이 44.2%, 신당 21.5%, 민주당 17.0%, 정의당 1.8%, 통진당 0.8%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실체도 없는 신당의 지지율이 민주당을 앞서고 있는 것이다. 비 내리는 서울광장에서 서슬퍼런 표정으로 '전국순회 장외출정식'을 갖는 민주당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여전히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나는 60년 전통의 민주당이 이런 식으로 가다가 안철수 신당에도 뒤처질까 두렵다. 민주당은 정말 정권을 잡고 싶은 걸까?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