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9월이라면 아직 며칠 남았지만 한자문화권인 한·중·일 세 나라가 모두 음력 9월을 '국화의 달(菊月)'이라 한다. 중국에선 '꽃의 사계(四季)'라고 해서 봄이 작약, 여름은 연꽃, 가을은 국화, 겨울은 매화로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 국화다. 묵객(墨客)의 벗인 사군자(四君子)가 매, 난, 국, 죽이고 예부터 국화를 불로장수 및 상서로운 영초(靈草)로 여겼는가 하면 '상하걸(霜下傑)'이라 불렀다. 서릿발이 차디차도 굴하지 않고 외로이 피는 절개의 꽃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런 상하걸의 가을을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하지 않던가. 중국엔 선비가 아닌 사람도 국(菊)이라는 성씨가 다 있고 일본에도 키쿠치(菊池), 키쿠카와(菊川), 키쿠오카(菊岡), 키쿠타(菊田) 등 국화 菊자가 들어간 성씨는 흔하다. 그만큼 국화를 사랑하다 못해 미칠 정도라는 증거가 아닐까.
일본에선 또 국화를 가리켜 달밤에 고고(孤高)히 별을 쳐다보는 '성견초(星見草:호시미구사)'라며 한껏 멋을 부리고 음력 9월 국화가 피는 계절의 새파란 하늘, 청명한 날씨를 '국일화(菊日和:키쿠비요리)'라 일컫기도 한다. 자고로 중국의 선비들은 또 어땠는가. 국화의 계절인 음력 9~10월 달밤이면 국화차와 국화주를 마시고 국화를 넣어 만든 과자인 '국고(菊고:쥐까오)'를 어석거리며 씹는다. 그래도 울적하면 이현금(二絃琴)인 '얼후(二胡)'를 뜯고 기분이 좀 달떠지면 칠현금인 '구친(古禁)'을 탄주해댄다. 그러고는 속에 말린 국화를 넣은 '국침(菊枕:쥐전)'을 베고 꿈결에 드는 걸 최고의 그윽한 멋으로 여겼다. 도연명이 그랬고 두보가 그랬다. 배우의 별칭조차 '국인(菊人:쥐런)'이다. 연극계는 '국단(菊壇:쥐탄)'이고 극에 관한 얘기는 '국담(菊談:쥐탄)'이다.
내일부터 2주간 전시한다는 광주(廣州) 국화 축제에 중국인과 일본인을 다수 초대해 보는 건 어떨까. 이국땅인 한국에서 취해 보는 그들의 국화 향기는 어떻게 다를까 아닐까. 짐승과 다른 인간의 마음이 가장 순수하게 천사의 영역까지 근접할 수 있는 때가 바로 오상고절의 국화 향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닐까 싶다. 이 풍진 세상, 백팔번뇌 깡그리 내려놓고 광주 국화 향기에 흠뻑 취해보는 건 어떨까.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