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도, 살아남은 사람도 고통스럽기는 모두 마찬가지야.”
전쟁은 잊혀져가고 있지만 그 상처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또렷이 남는 사
람들이 있다.
21살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전쟁터에서 잃고 50여년간 홀로 살아온 조성완
(71·수원시 팔달구 매탄동)할머니는 “젊은 시절에는 먹고 살기 위해 정신
없이 살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첩첩이 쌓이는 외로움은 정말 견디기 힘들
다”고 말했다.
지난 51년 5월. 6·25전쟁은 남편 이정규(당시 23세)씨를 전장으로 내몰았
다. 그리고 날아온 전사통지서.
결혼생활 3년 6개월만에 조씨에게 남은 건 이씨의 유해와 100일이 갓지난
젖먹이 딸 효숙씨가 전부였다.
이 때부터 모진 시집살이와 힘겨운 가장노릇은 조씨를 지겹게 따라다녔다.
10여년간 시부모와 7명의 시동생의 뒷바라지를 도맡았던 조씨는 시부모가
모두 돌아가시자 초등학생 딸을 데리고 충북 음성에서 서울로 올라와 어렵
사리 일자리를 마련했다.
“아침마다 매달리는 딸을 떼어놓고 출근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는 조씨
는 “딸이 시집가던 날, 남편의 빈자리가 얼마나 크게 느껴지던지 경사스러
운 날 눈물만 흘렸다”며 또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2일 남편이 묻힌 서울 동작구 국립묘지를 찾았다는 조씨는 “몸이 점
점 쇠약해지니까 남편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며 장롱 깊숙한 곳에서 신문
지로 곱게 싸인 액자 하나를 꺼냈다.
남편 이씨가 15살 때 찍었다는 사진을 오십평생 가보처럼 간직했던 조씨는
“하늘나라에서 남편을 만나면 남들처럼 어깨도 주물러주고, 부부싸움도 해
보고 싶다”며 모처럼 환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고달픈 인생 속에서 누구보다 남을 위하는 방법을 몸소 깨우친 조씨는 지
난 94년부터 아주대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조씨는 “힘이 닿는 한 어느 곳에서건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다”며 “힘들
게 살아온 만큼 나보다 힘든 사람들을 위해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
고 말했다.
죽은 남편이 돌아올 것만 같아 집밖을 서성였다는 20대 미망인은 어느덧 고
희를 넘겨 깊이 패인 주름살만큼의 굴곡진 인생을 담담하게 회고하고 있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