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비단길이라고 부르는 실크로드는 고대에 비단무역을 계기로 하여 중국과 서역 각국을 이어준 육해교통로를 말한다. 말이 실크로드이지 목숨을 건 머나먼 행로였다. 이 길은 처음에는 전쟁을 위한 길이고 문물을 거래하는 길이며 종교적으로는 포교의 길이 되었다. 실크로드가 처음으로 열린 것은 前漢(기원전 206~기원후 25) 때이다. 한무제는 서아시아로 통하는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장건을 중앙아시아에 파견했는데 이를 계기로 중앙아시아 및 지중해의 동편에 이르는 서방 각지와 문물이 왕래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가 번성하였던 중세이래 유럽인들은 크고 작은 많은 순례지들을 돌아다녔다. 그들에게 성지순례는 살아있을 때나 죽고 나서 속죄를 위한 중요 수단이 되었다. 본인이 신체적으로 불편하면 대리인을 보내기도 하였다 한다. 어디로 순례를 다녀왔는가에 따라 등급이 매겨졌는데 예루살렘이 최고의 등급이고 로마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그 다음 등급이었다. 특히 북부 유럽사람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순례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였고 1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페인 북부의 모든 길은 이곳으로 이어졌다. 순례자들은 성 야고보의 유해가 있다는 대성당을 찾았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750㎞에 달하는 여정을 도보 순례를 하고 있다. 장대한 산악지대와 고풍스런 마을들, 숲으로 뒤덮인 길을 걸어 성지에 도달하는 영적 희열은 대단하다.
우리에겐 어떤 길이 있었을까? 요즘 경주에서는 문화엑스포의 일환으로 경주와 이스탄불을 잇는 새로운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있다. 중국 서안에서 출발하는 실크로드가 아닌 경주에서 시작점을 잇는 실크로드이다. 8세기의 신라승려 혜초는 요즘의 인도인 천축을 다녀와서 왕오천축국전이라는 기행문을 썼다.
한반도 서측의 해안에 형성된 고대 해양로는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을 잇는 길로 가장 활발한 문물의 교통로였다. 고대에는 육지에 가까운 해안을 따라 항해하여 중국에서 한국에까지 약 2주정도 걸렸다한다.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조류와 풍향에 따라 2, 3일 이내에 도달하기도 하였다. 신안 해저에서 발견된 배에서 수많은 송대 도자기가 실려 있어서 많은 상선이 드나들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길은 여기저기 생기게 마련이다.
부끄러운 역사이지만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나서 왜군이 부산에 다다른 20여일만에 한성이 함락되었다. 오랜 평화를 믿고 이율곡의 십만 양병론 등을 무시하며 전쟁준비를 게을리한 탓도 있지만 당쟁에 국력이 쇄진해졌으며 세계와의 소통에 소홀한 까닭에 당한 굴욕이었다. 조선시대 각지에서 과거시험을 보러 서울로 가는 선비는 얼마나 걸렸을까? 걸어서 열심히 가노라면 약 2주면 족하지 않았을까? 목포와 신의주를 연결하는 국도1번길은 이제 추억의 길이 되었다. 새로운 고속도로가 개설되었으니 그 역할을 내준 셈이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을 지나고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여행을 하고 싶다. 언젠가는 통할 길이다.
요즘 사회의 여러 현상이 모두 막혀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막힘은 단절이요 이어져 뚫림은 소통인데 어찌 모두 닫고 살려 하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홀로 있지 않고 남과 연계속에서 소통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가치가 서로 이어져야 더 높은 가치를 낳는 것이다. 정치는 대화가 중지되었고 경제는 선순환이 되지 않아 계층간에 갈등이 심하니 국민의 삶이 갈수록 어렵다. 국민들의 얼굴이 근엄하고 웃음이 적은 것도 소통이 잘되지 않음일 것이다. 소통으로 길을 열 지도자는 없는 것일까?
/천득염 전남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