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
'임금이 백성과 함께 즐거워 한다'
맹자는 여민동락을 강조했다
브레이크 없는 한국정치는
왜 국민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못주는지 멈추고 되돌아 봐야한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있기 때문


올해 초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한 선배를 면회 가게 되었다. 정치인의 길을 걸었던 사람으로 공공기관의 꽤 높은 요직에 있던 선배였다. 재임 중 민간업체와의 계약에서 비리 혐의가 문제되어 재판을 받고 옥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본인은 매우 억울한 심정이고 정치적으로 불이익을 당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무엇보다 정치를 하게 된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고 석방되면 사업가의 길을 가겠노라며 울먹였다. 진정으로 위로의 말을 전달하고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을 영치해 주었다. 구치소를 빠져나오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왜 우리는 '정치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지난 추석 직전, 유명 성악가의 공연에 초대받아 가게 되었다. 미국에서 공부한 성악가의 남편은 영향력있는 언론사의 논설위원이다. 오랜 기자생활의 인연과 인맥 때문인지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여야 유력 정치인들도 꽤 눈에 띄었다. 이윽고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노래가 대부분 외국의 유명 가곡이었다. 우리말 가사와 선율이 아니라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음악이 주는 매력으로 마음이 꽤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공연이 끝날 무렵 앙코르송으로 우리 가곡인 '보리밭'이 열창되자 참석한 몇몇 여야 정치인들도 손수건을 연신 눈에 갖다 대며 감동에 겨운 모습이었다. 여의도 정치에서는 한 치의 양보 없이 싸우는 이들에게도 이날 공연은 큰 감동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왜 365일 여의도 정치는 1시간 30분여의 공연에 비해 감동을 주기는커녕 스트레스만 쌓이게 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정치적 관심과 정치적 영향력은 지나칠 정도이다. 다른 국가에 비해 정치적 관심이 높은 것은 그만큼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정치력 영향력이 크다는 것은 이것을 통해 다양한 이익 추구가 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아시아연구원의 2013년 파워조직 인식조사를 보면 검찰, 경찰, 국세청, 청와대 순으로 10위권 내 위치하고 있다. 2011년 조사와 비교할 때 영향력 순위는 더욱 높아졌다. 이에 반해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21위에 그쳤다. 경제 수준은 선진국에 버금가지만 '시민의 힘'은 권력의 그것만 못한 것이다. 여전히 경찰 앞에서는 이유 없이 위축되고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상징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정치인뿐만 아니라 많은 지도층까지도 개인적 비리와 욕심으로 단죄 받아도 정치적 불이익 때문이라고 항변하는 것을 곧잘 볼 수 있다.

정치적 영향력이 큰 것만큼 그것으로부터 받는 정치사회적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 연일 쏟아지는 충격적인 뉴스들은 즐겁고 유쾌한 내용은 별로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희망과 기대를 가졌지만 임기 초부터 들려오는 뉴스는 대부분 짜증나는 내용들이다. 정부인사의 성추행 파문, 대선 과정의 여러 가지 의혹, 4대강 사업관련 수사, NLL 대화록 논란, 검찰총장 사퇴, 복지 공약의 변경과 축소 등 국민들이 감동받거나 치유될 만한 것을 찾을 수가 없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에서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그런 한국인의 자살 이유 중에 정치사회적 스트레스가 중요하게 거론된다. 검찰총장의 사퇴와 관련해 우리 사회는 다시 분열되고 공방을 벌였다. 거의 모든 국민은 검찰총장의 개인사와 권력기관 사이의 힘겨루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정치권이 당분간 대타협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니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도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앞으로 여야가 국민을 볼모로 벌이는 청문회도 수차례 지켜봐야 하고 엉성한 공약을 앞다투어 만들었다 순식간에 바꾸는 모습도 수차례 지켜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맹자는 '임금이 백성과 함께 즐거워한다'는 의미로 여민동락(與民同樂)을 강조했다. 브레이크 없는 한국 정치는 왜 국민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지 못하는지 지금 멈추고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고 그것은 바로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