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채우 수필가·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
윷판암각화는 최소 1만년전이란
오랜 역사와 아메리카대륙에
이르는 넓은 분포를 갖고 있어
전세계 선사시대 어느 암각화보다
가치가 매우 높아 파괴 되지않게
각지자체와 정부는 적극 보호해야


대통령께서 반구대암각화를 생각하면 '저녁에 잠이 안 온다'고 할 정도로 강한 애정을 표명했다. 대통령의 관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바로 이어서 문화체육관광부나 문화재청 등에서 정부 대책들이 신속하게 나오고, 카이네틱댐 설치안이니 반구대보존위원회니 심지어는 반구대에 관한 정기간행물까지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선사문화 유산에 대한 썰렁했던 분위기에 비해 볼 때, 이런 뜨거운 관심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선사시대 유적으로 반구대암각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선사시대 한반도의 2대 유적으로 고인돌과 윷판형 암각화를 들고 싶다. 고인돌은 선사시대의 무덤이나 제례의식과 관련된 종교건축물로 추정되는데, 한반도에만 약 3만5천기가 남아있다. 이는 전 세계 고인돌의 40%에 달하는 것으로, 만주 지역까지 합산한다면 전 세계의 70%가 우리 조상들의 거주지역에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러나 이보다 더 놀랍고 신기한 것은 윷판형 암각화이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우리만의 독특한 바위그림이다. 그 숫자는 제대로 집계된 적은 없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현재까지 200여개소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체계적으로 조사해 본다면 이보다 훨씬 더 높은 수치를 보일 것이다.

윷판형 암각화는 윷놀이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고인돌 위에 새겨진 것도 몇 점 발견되었다. 대체로 지금까지는 대부분 윷놀이를 위한 것이 아니면 아들을 기원하는 성혈(性穴)의 민속으로 간주했고, 기껏해야 철기시대의 별자리 정도로 취급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역사나 의미를 분석해 보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해와 달과 별의 운동 규칙 및 사방과 사계(四季) 등 고대인의 세계관과 종교관을 담고 있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윷놀이는 같은 동아시아지역에는 없고, 오히려 아메리카 전 대륙에 퍼져 있다. 알래스카,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의 거의 모든 지역 인디언들이 윷과 거의 흡사한 놀이를 즐기고 있으며, 파라과이나 볼리비아의 인디언들은 우리처럼 '윷'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19세기 말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놀이문화를 연구하던 미국의 유명한 민속인류학자인 스튜어트 컬린은 우연히 우리의 윷놀이를 보고서는 '윷놀이는 전 세계 민속놀이의 원형으로 심오한 종교적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면서, '한국의 놀이'(1895년)란 대작을 남겼다.

컬린도 간파했던 바와 같이 인디언 윷이 한반도에서 전래되었다고 한다면, 대체 언제 건너갔을까? 선사시대에 한반도에서 미주대륙으로 가려면 뗏목을 타고 태평양을 건넜다고 볼 수는 없다. 오직 가능한 단 하나의 통로는 베링해가 얼어붙었을 빙하기에 해협을 건넜을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1만년 전에 있었다는 마지막 간빙기에 우리의 윷문화가 한반도에서 아메리카대륙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체계적인 게임형태를 갖춘 윷놀이는 윷판형 암각화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뒤에 형성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으니, 윷판 암각화나 윷놀이의 역사는 아득한 구석기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황하문명은 4천년 전에 꽃을 피웠다고 하지만, 우리의 윷판 암각화는 최소 1만년 전이란 오랜 역사와 아메리카대륙에 이르는 넓은 분포를 갖고 있어서, 현재 발견된 전 세계 선사시대의 어떤 암각화보다도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윷판형 암각화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거나 파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도심의 주변까지 산을 허물어 아파트단지를 짓고 산마루에는 체육공원을 개설하면서 하늘에 인간의 경건함을 바치던 윷판 바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냇가에 전망좋은 경관을 갖고 있던 윷판 바위는 일말의 고려도 없이 파괴되어 관광단지로 변하고 있다.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각 지자체와 함께 정부의 관심과 대책을 촉구한다. 자칫하다 놀이공원과 음식점 짓는다고 수만년 전 선조가 남긴 선사시대의 보물을 파괴해 놓고, 중국과 유럽으로 관광여행 다니는 못난 후손들이란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임채우 수필가·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