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猫白猫 住老鼠 就是好猫(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1970년대 말부터 덩샤오핑이 취한 중국의 경제정책이다. 실용주의를 비유한 표현으로 중국을 발전시키는 데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무관하다고 주장한 그는 이 이론을 내세우며 실용주의적 노선을 제시했다. 이달 말 치러질 화성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도 지역 발전을 위해 누가 더 잘할 것인지 토박이든, 낙하산이든 관계없다는 논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경기도민과 화성시민들은 지금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혼외아들 의혹으로 물러난 것이나,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표를 내던진 것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화성갑 지역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누가 공천될지에 관심이 쏠려있다. 친박계 '거물'인 서청원 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가 이 지역에 출사표를 던져 유력한 여당 공천 후보자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현재는 서 전 대표와 김성회 전 의원으로 최종 압축된 상태로 이번 주 내로 공천자가 발표될 예정이다.

이를 놓고 화성 토박이 출신인 김 전 의원은 "화성에 단 한 달이라도 살아 봤느냐"며 "보궐선거 출마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한 "서 전 대표의 정치 재개를 두고 야당의 공세가 이미 시작됐다"면서 "정치 혁신을 해 온 새누리당과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주고 있다"고 서 전 대표를 압박했다. 서 전 대표의 주장도 만만찮다. "내가 나서야 당내 화합과 소통을 할 수 있다. 애초부터 보선에 출마한다면 수도권에서 당당하게 심판을 받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송산그린시티 및 유니버설스튜디오, 동서연결 고속화도로 숙원사업을 해결하는 데는 큰 정치를 해본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낙하산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외가가 화성으로, 본인도 6·25때 화성군 일왕면(현 의왕시 왕곡동) 외가에서 피란생활을 했다고 한다.

공직자추천심사위원장인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지난달 23일 라디오에 출연해 이런 말을 했다. "서 전 대표와 같은 전국적인 스코프(scope·범위)를 가진 분이 와서 화성을 좀 키워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충청 출신인 서 전 대표도 이곳에 외가의 연고가 있다"고 했다. 심사위원장인 당 사무총장이 이렇게 말했을 정도면 서 전 대표로 기울어졌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홍 사무총장은 본인이 한 말에 아차 싶었는지 엊그제는 한 라디오에서 '청와대에서 내정을 했다느니 하는 서청원 전략공천설'에 대해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부인하면서 한 발 물러섰다.

이러한 가운데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이 지난달 29일 귀국해 화성갑 보선 출마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청원 전 대표가 공천을 받는다면 그 대항마로 경기도지사를 지낸 손 고문을 지목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화성갑 지역은 전통적으로 농촌지역이다. 여권 강세지역이기는 하다. 그러나 옛날처럼 핫바지가 아니다. 더 이상 어리석은 시골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략공천으로 서청원 전 대표나 손학규 상임고문의 빅매치가 이뤄진다 해도 표심이 어디로 갈지는 누구도 모른다. 자고로 시험에 붙고 떨어지는 것이나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송산그린시티나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큰 인물이 없어 늦어지는 게 아니다. 국가의 곳간이 비고, 경기침체로 민간사업시행자가 돈이 없어 지지부진할 뿐이다.

본래 경기도내 대도시나 신도시 지역에는 지역 출신이 아니더라도 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을 지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주민들 자체가 외지에서 많이 와서 살고 있는 이유도 있고, 정치적인 성향이 같아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화성갑 지역은 토박이들이 대부분 살고 있는 지역이다. 물론 토박이 주민들 중에도 '흑묘백묘(黑猫白猫)'의 논리를 가진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다. 새누리당이든, 민주당이든, 민심은 천심이다. 다른 당이든 아니면 무소속이든 지역발전만 이루면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입신이나 재기를 위해 이리 저리 기웃거리는 모양새는 안 된다. "한국 국회의원 선거에서 장기를 두는 식으로 누구는 어디에 보내고 누구는 어디로 공천을 결정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미국은 동네에서 최소 5년은 살아야 연방의원 후보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김창준 전 미연방 의원의 말이 생각나는 요즈음이다.

/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교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