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치쇄신특별위원회가
아무런 성과없이 활동 종료
여야 정치인들 공약 뒤엎은
그야말로 국민을 업신여긴
후진적 정치행태 보여줘
정치는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하다. 인간이 이기적이지만도 이타적이지만도 않은 존재인 이상 정치는 인간사회의 갈등 조정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협력적인 관계로 살아갈 수도 있지만, 서로 다투고 투쟁하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막는 조정력을 갖기 위해서 국가권력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대통령도 뽑고, 국회의원도 뽑는다. 국가사회의 의사조정권을 주기 위해 우리는 선거를 하며, 이 권력을 가졌거나 갖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우리는 정치인이라 부른다. 정치경쟁의 장에서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시민들은 이 약속으로 그들을 선택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은 돌에 새긴 금언과 같이 지켜져야 한다. 이것이 공약이며, 그들의 말로 우리는 미래를 짐작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한국의 정치인이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경우는 홍수 때의 빗줄기처럼 많다는 것이 문제다. 지키지 못할 공약남발, 일단 권력을 쥐고 나면 약속은 파기하고 마는 것이 우리 정치의 후진적 양상이다. 요즈음 대통령의 복지공약 실현을 두고 장관사퇴라는 초유의 사건이 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약 작성에 참여했다는 핵심측근인 장관이 이제 와서 자기 신념이 아니었다는 것도 문제고, 그 공약이 지키지 못할 것이었지만 표를 얻기 위해 내놓았다는 것도 문제이다.
정당공천제의 폐지 약속이 또 그렇다. 이 문제는 정치의 공약 깨기 중에서 모든 정당이 관련되고 모든 정치인이 관련된다는 점에서 가장 악질적인 약속위반 사례가 될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이 약속은 중앙정치도 지방정치도,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지방수장 및 지방의원들도, 국민도 시민도 모두가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월로 되돌아가 보자. 여야당의 대통령후보들이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 후보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약속하였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하향식 비민주적 정당공천제는 없어질 것으로 믿었다. 그 결과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정권이 탄생했다. 이 정부의 안전행정부장관도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3월 13일) 2014년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당공천제의 부정적인 사례로 지난해 치른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꼽았다. "기호 1번 후보가 사퇴했는데도 실제 선거에선 그를 찍은 표가 14%가 나왔다"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견수렴 및 관련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했다. 7월에는 야당인 민주당도 당원투표에서 67.7%가 폐지에 찬성하였고 이것이 당론이 되었다. 또 국민은 어떤가. 언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뷰 조사(9월28일)에서 응답한 국민들의 65.7%가 폐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모든 이의 의견이 결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청명한 가을 하늘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는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약속을 뭉개는 검은 연기가 가을 하늘을 뒤덮는다. 쓰레기 태우는 악취가 풍기는데, 여야막론하고 정치인들이 약속을 뒤집는 냄새다. 정당공천제 폐지를 의제로 한 국회 정치쇄신특별위원회가 아무런 성과 없이 지난 9월 30일 활동을 종료했다. 한 정치비평가는 여야당 모두 '지역구 국회의원이 줄 세우기도 힘들어지고', '공천장사를 하기도 어려워지고', '당원과 지역관리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정치인들이 후안무치하게 공약을 뒤엎는 것은 명료하다. '그 좋은 걸 왜 없애느냐'는 것이다. 그야말로 국민을 업신여기는 후진적인 정치행태이다.
2013년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148개 국가 중 25위로 2012년에 비해 6계단이나 내려갔다(세계경제포럼 WEF 9월 4일 발표). 그중 가장 꼴찌가 정치 분야에서 책임져야 하는 '정책결정의 투명성' 지표인데 이것이 137위이다. 공약파기를 일삼고 밀실에서 야합하는 냄새를 나라 밖에서도 다 맡는 모양이다. 정당공천제에 대한 정치인들의 태도를 눈여겨보아 다음 선거에서 거짓과 위선을 좀 치워냈으면 좋겠다. 가을하늘이 다시 푸르게….
/허훈 대진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