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15세기 르네상스기의 인문주의가 신의 굴레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인간성을 옹호하고 수호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삼았다면, 21세기 한국발 인문주의는 물신주의로부터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잃어버린 가치의 회복, 변화된 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가치관 정립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눈부시게 발전한 미디어와 정보 혁명은 역설적으로 사회구성원들을 개인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새로운 공동체의 회복이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전례 없이 빠른 산업화 과정을 거쳐 온 것도 한 배경이 된다, 이로 인해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최소의 시간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물량적 생산과 속도가 지상과제인 시대,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인사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창조성이 사회 각 분야의 화두가 되고 있는데, 특히 성장동력이 떨어진 한국경제의 혁신을 위한 핵심가치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한국 경제의 활로를 '창조경제'에서 찾고 있다.
이처럼 인문정신을 강조하는 배경을 살펴보면 이 시대가 문화적 전환을 요구하는 시대라는 방증이며 자본주의 축적의 위기의 시대라는 것을 말해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인문정신의 강조는 인문학과 같은 특정한 학문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변화, 다시 말해 철학의 대전환에 방점을 찍어야 하고 그럴 경우 충분히 의미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인문정신의 강조는 목표와 방법 과정에서 인문적이어야 한다. 인문주의의 목표는 자유롭고 평등하며 진실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민주주의적 가치와 전통을 확립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긴밀하게 연관되어야 하며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논의로 흐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인문정신의 강조가 계몽주의로 흘러가는 것도 특히 경계해야 한다. 정부의 인문정신 관련 정책이 우리사회 전반의 인문학 열풍을 일정부분 반영하고 있기는 하나 다분히 국민교양 방식이다. 위로부터의 문화운동은 성공한 사례가 흔치 않다.
한중문화교류에서 인문유대의 강화 역시 추상화 되면 두 국가가 공유하고 있는 한자문화나 유교문화를 매개로 한 교류 이상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어쩌면 교류의 출발점은 공통문화요소에서 찾되 그 목표는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여 자국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자원으로 삼아나가는 데 둘 필요가 있다. 또 국가 단위보다는 도시나 분야, 부문별 교류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인문정신의 회복이 가장 절실한 곳은 한국의 정치현실인지도 모른다. 정치쟁점이 되고 있는 대통령기록물 문제를 보면 대통령기록물이 제도의 문제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오직 상대당을 공략하기 위한 정쟁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김창수 객원논설위원,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