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민 프레시안음식문화학교교장
있는 것을 왜곡 하거나
없는 것을 조작하는 역사는
하늘에 죄를 짓는 일이다
공자 말씀에 "하늘에 죄를 지면
빌 데가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립학교들은 가급적 자기 학교의 역사를 올려 잡으려 애쓴다. 나의 모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사립 고등학교로, 1885년 8월에 겨우 두 명의 학생을 구워삶아 '학교'를 시작했고, 1886년 6월에야 고종의 편액을 받아 '정식 학교'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내 모교의 개교일자는 설립자인 미국 선교사가 증기선에서 내려 제물포에 발을 내디딘 1885년 6월 8일이다. 내가 다닌 대학 역시 1915년에 개교한 전문학교를 모태로 하고 있지만, 개교일자는 설립자 중 한 사람인 미국인 의사가 진료를 시작한 1885년 5월이다. 견강부회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실낱같은 근거라도 찾아 조금이라도 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오늘에 이어보려는 나름의 노력이라 치부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아무 근거 없이 자기 나라의 역사를 무작정 올려 잡으려는 짓거리는,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여진 판이 수 천 년 켜켜이 쌓여 이룩된 인류사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범죄행위이다. 한반도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졌다고 조작하기 위해 가공의 천왕들을 만들어 자기 역사에 끼워넣은 일본, 황하문명보다 더 오래 된 흥산문명이 발견되자 고대부터 만주 일대가 자기들 통치 하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그렇다. 말도 되지 않는 국수주의, 오도된 민족주의의 발로이지만, 동서고금을 통하여 자국 중심주의, 자국 이익의 관철이 국제관계의 실체임을 감안한다면, 그들 사회에서 그런 주장이 나올 수 있는 것도 현실이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은 그 해를 건국 60주년으로 삼고 각종 기념행사를 벌였다. 곧 미군정을 끝내고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일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이는 식민사관에 바탕한 완전한 역사왜곡이다. 대한민국은 1919년 4월 11일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됨으로써 건국된 것이며, 1948년 8월 15일은 그 동안의 어쩔 수 없는 '임시' 정부를 정리하고 '정식' 정부가 출발한 날일 뿐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임시정부 출범 때 신석우 선생이 발의하여 만장일치로 채택되었고, 1948년의 제헌의회도 압도적으로 대한민국을 국호로 결정하였으니, '임시'정부 대한민국이 '정식'정부 대한민국으로 바로 이어진 것이다.

1948년 5월 31일 제헌의회 임시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은 개식사에서 "오늘날 우리가 있게 된 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 둘째로 애국선열들의 희생적인 혈전, 셋째로 우방의 원조이다. 우리는 먼저 헌법을 제정해야 하고, 대한민국 독립민주정부를 재건설해야 한다. 나는 이 국회를 대표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이 다시 탄생된 것과 이 국회가 우리나라에 유일한 민족대표기관임을 세계만방에 공포한다"라 하였으며, 기자회견이나 자신의 글에서도 누차 "우리는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승만 정권 하에서 발행된 관보 창간호도 발간연도를 임시정부 수립 30년이라는 뜻의 '민국 30년'이라고 표기했다.

건국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첫째는 우리 민족 최초로 나라를 연 고조선의 건국이고, 둘째는 왕건의 고려 건국, 이성계의 조선 건국과 같이 왕조가 바뀌면서 즉위식을 하고 국호를 바꾼 건국이다. 두 번째 건국으로 보면 조선이 대한제국이 되고,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이 되었으니,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정해진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이 건국일임은 너무나 당연하다.

요즈음 일제시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운동을 축소하거나 폄하하려는 시도들이 소위 '역사 바로 잡기'라는 명목 하에 횡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내세우기 위해 '건국'의 시의조차 무참히 농단한다. 그러면서 이를 교과서로 만들어 후세들을 가르치겠다니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 역사는 일월이 조명하는 정의의 재판정이다. 있는 것을 왜곡하고 없는 것을 조작하는 일은 하늘에 죄를 짓는 일이다. 공자님 말씀에 "하늘에 죄를 지면 빌 데가 없다"고 했다.

/김학민 프레시안음식문화학교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