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무려 357조원에 달하는 정부 재정 가운데 불과 2천만원을 투입하는 여고생 제안사업만큼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을 거치는 사업이 드물다는 사실이다. 누리과정을 살펴보자. 누리과정이란 3~5세 어린이들에게 달마다 29만원씩 개인이 부담하던 것을 공공이 책임지는 정책이다. 보편적 복지정책이다. 우리 사회가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시작한 출발점은 2009년 경기도민들이 선택한 학생 무상급식이었다. 지금은 유아무상보육과 교육·고교무상교육·반값등록금, 의료비 보장과 기초연금 확대까지 거의 모든 정당인들이 약속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2009년 경기교육감선거,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를 통해 보편적 복지의 확대를 승인했다. 교육청은 물론 중앙정부와 지자체 대부분의 공직자들이 이 흐름을 탄탄히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복지국가로 가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주권자들이 일관되게 승인한 사회 변화를 돌이키자는 주장보다는 복지국가를 위해서 증세가 필요한지, 지하경제 양성화가 필요한지, 세출 혁신이 필요한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생산적이다. 현재 유치원 누리과정에 필요한 재정 전액과 어린이집 소요액의 65%를 교육청이 부담한다. 경기도교육청은 올해 유치원에 3천882억원을, 어린이집에 3천321억원을 지원한다. 어린이집 나머지 35%는 중앙정부, 시도청, 시군구청이 분담한다. 이런 방식은 지난 정부의 총리와 장관들이 결정했다. 지난 정부 공직자들은 경기도의 여고생들에게 배웠어야 한다. 시도교육청의 재정을 편성·결정·집행하는 권한은 교육감과 시도의회에 있다. 지방교육자치에 쓰는 재정이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 총리·장관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넘어서는 결정을 하려면 당연히 교육감과 지방의회의 동의를 얻었어야 한다.
광역·기초단체장들의 동의도 얻었어야 한다. 경기도의 여고생들은 불과 2천만원짜리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전교생 설문조사, 인터뷰, 공청회, 현장조사를 거치며 학생들은 물론 교직원·학부모의 의견까지 담았다.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영유아 보육 재정이 바닥났다. 국채나 지방채를 발행해야 한다. 법을 고쳐야 한다고 시끄러운 이유는 중앙과 지방정부 재정 책임자들의 합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김상곤 교육감이 제안한 '복지국가를 위한 재정책임자의 사회적 합의체'를 빨리 구성해서 운영해야 한다. 대통령과 정당 대표, 교육감과 광역 및 기초단체장들이 직접 머리를 맞대고 보편적 복지 재원 조달 방안을 정기국회가 끝나기 전에 결정해야 한다. 고등학생들에게 변명하기에도 부끄러운 과정을 뒤늦게라도 바로잡자.
/김현국 경기도교육청 정책기획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