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청소년 대상 인성교육은
성실·정직·양심·의사소통 등
추상적인 내용들 보다는
실생활에서 우리의 행복을
갉아먹는 인간성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교실에서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상에서 우리를 화나게 하거나 짜증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조별로 분석도 해보고 해결책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뭣보다도 학생들이 내 놓은 항목들이 얼마나 많은지 200여개가 넘을 정도로 그 양이 대단했다. 개수가 많아 영역별로 분류를 하기도 어려웠지만, 대체로 학생들의 생각은 인간성이나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나 길거리, 아파트, 지하철, 식당 등의 공공장소에서의 경우처럼 내적, 외적인 영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설문의 주제를 약간 비틀어서 '현대사회에서 놀부 되기'라는 식으로 우리 스스로가 남에게 어떤 피해를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자고 했는데 학생들은 상당히 신이 난 듯 했다. 몇 가지를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노동력 착취하기, 새치기하기,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물 내리지 않기, 자기 할 말만 하기, 이간질하기, 앞뒤가 다르게 행동하기, 뒤에서 험담하기, 다른 사람 말 끊기, 다 같이 밥 먹고 계산할 때 빠지기 등. 물론 학생들이라서 학교에서 발생하는 대리출석이나 표절 등도 있었지만 아마 이런 물음을 일반인이나 직장인들로 확대했다면 우리 사회의 거대한 인성문제 지도를 그려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사회가 괴로워하고 피곤해하는 것은 계층 간의 갈등이니 복지니 하는 거창한 문제 이전에 이러한 시시한 인성의 모든 것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설문이 있은 후 가족들 사이에서 겪는 인성 문제에 대한 항목을 다시 제시해보라고 했는데 가정에서도 상당한 양의 인성 문제가 도출되었다. 모르는 사람들과의 관계만큼이나 잘 알고 있는 가족들 사이에서도 유사한 문제는 그대로 잔존해 있었다. 역시 가정에서도 서로에 대한 존중이나 돌봄, 또는 배려의 부족 탓이 컸고 우리 자신의 이기심이 그 중심을 차지했다. 이전 수업에서의 폭력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항목들에 대한 답도 내막을 들여다보면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상식적인 결론이 그 안에 숨어 있었다.

작년에 출판된 데이비드 핼펀의 '국가의 숨겨진 부'는 경제적 부와 달리 사람들의 행복은 그 사회가 갖고 있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도덕적 자본에 달려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책의 핵심은 한 사회가 진정 행복해지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또는 문화적 자본인데 그 핵심은 존중과 돌봄이다. 이 책의 역자는 '한국의 사회적 신뢰 수준'에 관한 도표를 책 속에 끼워 넣었는데 그 자료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대체로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한 국가 간 비율이 노르웨이가 74%라면 한국은 28%로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돌봄, 믿음 이런 인성항목들은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며 우리 사회가 옛날부터 늘 강조해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런 것들의 결핍으로 함께 살아가는데 있어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고 삶에서 만족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서는 10월 말 한 주간 동안 교육부의 시민인문강좌사업으로 '이웃의 인문학'이라는 주제 하에 이웃과의 친밀한 삶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모색하고 있다. 그 중 한 프로그램이 "층간소음, 인문학으로 풀자"라는 것인데, 층간소음 문제를 두고 아파트 층간의 두께 등 건축물의 구조적인 논의를 하지만 결국은 자기중심적인 삶에 더해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에 그 원인이 있다 할 수 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층간소음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고 살인이 발생하는 나라는 한국사회 말고는 없을 것이다.

흔히 인성교육하면 청소년을 대상으로 두고 성실, 정직, 양심, 자율, 자신감 또는 헌신, 의사소통 등 검증하기도 쉽지 않은 내용들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막연하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추상적인 것들로 채워지는 인성보다는 실제로 우리 행복을 갉아먹는 인간성 문제의 숲을 헤쳐나가면서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주변의 시시하다고 여겨지는 놀부 같은 인성의 잔가지를 쳐 나가다보면 진정 우리 사회가 원하는 행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