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며칠 전 미국의 톰슨 로이터가 2013년 세계 100대 혁신기업 명단을 발표했다. 우리 기업 중에는 삼성전자, LG전자, LS산전 등 3곳이 선정되었는데, 28개 기업이 선정된 일본에 비해 9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이어서 실망과 염려가 적지 않다. 이번 발표를 보니 우리가 그동안 삼성전자의 실적에 의해 착시(錯視) 속에서 살고 있었던 듯싶다. 즉, 삼성전자 외 다른 모든 곳에서도 일본을 추월한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발표는 아직 일본에 비해 혁신수준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종(警鐘)이었다. 우리는 이 경종을 계기로 최소한 두 가지 교훈을 얻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첫번째는 많은 업종에서 아직 추격 전략의 가치는 높다는 교훈이다. 한국경제의 성장에서 추격(catch-up)이라는 단어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글로벌 선도 기업을 타깃으로 설정하고 그들을 추월하는 것이 바로 추격 전략인데, 우리는 그 추격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성장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최근 삼성전자를 비롯한 몇몇 글로벌 초우량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경제전략 전체를 추격 전략에서 혁신선도 전략으로 옮기려는 분위기가 등장했다. 그런데 그렇게 전체적으로 전략 축을 옮길 일이 아니다. 혁신과 창조의 경쟁 시대로 접어든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아직 모든 곳에서 추격 전략을 버릴 정도의 수준은 아닌 것이다. 추격 전략을 벗어 던질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서의 고민은 소정의 초우량 기업에만 해당한다. 우리는 현재 혁신선도 전략과 추격 전략을 모두 추진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두번째 교훈도 중요하다. 우리는 보통 혁신을 말할 때 주로 대기업 위주의 혁신을 말한다. 그러나 대기업들에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는 중소기업 쪽의 혁신 성과가 없으면 밑힘이 부족한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지난 몇 년간의 세계 혁신기업 리스트에 우리는 몇 개의 대기업이 고정적으로 올라섰을 뿐이다. 이것이 주는 메시지는 대기업만으로는 혁신기업 숫자가 늘어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중소기업의 혁신은 중소기업만의 이슈가 아니다. 중소기업 제품을 부품으로 구입하는 대기업에도 큰 혁신을 준다. 부품 쪽의 혁신은 대기업의 자체 혁신만으로 얻을 수 없던 새로운 경쟁력을 주는 일이다. 어쩌면 한국경제가 이제부터 얻을 수 있는 혁신 중 가장 많은 분량의 혁신이 나올 영역일 수 있다. 대기업 쪽에서도 중소기업의 부품소재 연구개발 실력이 높아지는 것이 자신들의 혁신 역량을 높인다는 인식의 전환을 확실히 해야 한다.

물론 중소기업의 혁신에는 조심해야 할 염려거리도 있다. 중소기업 쪽에서 대기업들이 자체(in-house) 연구소를 활용했던 실적을 모방하여 사내 연구소 설립에 많은 관심을 쏟아왔다. 그래서 사내 연구소를 가질 만한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도 연구소 설립을 추진하곤 했다. 때마침 중소기업 연구소에 대한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그 추세는 급격히 확대되었다. 그런데 정부 지원금을 확보하기 위해 유명무실한 수준의 연구소가 늘어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위험을 낳을 수 있다.

문제는 정부의 R&D 지원이 사내 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정부는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중소기업의 연구개발을 돕는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의 연구개발 능력을 키운다는 취지는 유지하더라도 정책 시행은 얼마든지 운영의 묘(妙)에 의해 성과가 달라질 수 있다. 능력 있는 중소기업이 사내 연구소를 갖고자 하는 의도를 말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권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까지 정부가 연구소를 설립하도록 유인할 필요는 없다. 중소기업의 혁신은 대기업과 같이 자체 연구소를 세워야만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중소기업에 연구개발을 유인할 때 대학을 매개체로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가 클 것이다. 대학과 공동연구를 유인하는 쪽으로 지원 방향을 설정한다면, 중소기업은 실질적인 혁신을 얻으면서 동시에 연구소 설립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