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배 시인
목계 가는 가을길에 선 나는
수많은 길을 버리며 코스모스와
황금들판을 뒤로한채 달린다
쇠락한 목계나루엔 방물장수도
객주집 아낙들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저 쓸쓸하기만…


나는 가을이 되면서 시경재(詩景齋)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로움이다. 시경재에서 창밖으로 흐르는 느린 시간을 내다보거나 새들이 낮게 날아가는 침묵의 공간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면 계절이 금광호수를 건너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나는 물속 같은 사유의 시간을 조용히 짚어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붉은 해는 늘 차령에 걸려 낙조의 쓸쓸함을 몸부림치는 것이지만 차령은 언제나 묵묵하다. 묵묵한 차령에 기대어 세월이 조용한 물소리를 내며 흐르는 것을 관조하는 일이 지루해지면 나는 길 위에 나서기도 한다.

길은 누구에게나 삶의 궤적이며 설렘이고 아득함이며 서러움이다. 길은 희망이며 절망이고 여유이며 노동이고 사랑이며 파탄이다. 길은 욕망이며 해방이고 해탈이며 세속이고 소유이며 존재다. 특히 가을 길은 안부며 전언이고 귀환이며 떠남이다.

길의 끝에는 마을이 매달려 있고 마을마다 작은 길을 골목으로 밀어넣어 이웃을 거느린다. 골목은 언제나 사람 냄새로 가득 차고 밤마다 별들이 내려와 창을 기웃거린다. 때론 달빛이 늦게 남아 새벽 골목을 나서는 이웃들 어깨에 은빛 미소를 얹기도 한다. 이처럼 골목은 길의 완성이기도 한 것이지만 길은 내게 떨칠 수 없는 유혹이다.

나는 목계 가는 가을 길 위에 선다. 가을 길은 구름을 뒤로 하고 빠르게 흐른다. 죽산이 흘러가고 일죽이 흘러가고 길은 장호원에 이른다. 길은 장호원에서 잠시 주춤거리지만 목계나루를 향해 숨을 고른다. 목계나루를 향해 가을 길은 속도를 올린다. 나는 목계나루에 이르는 길을 위해 수많은 길을 버리고 길가 코스모스를 버리고 붉은 칸나를 버리고 황금 들판을 버린 것이다. 내 가을 길은 목계나루에 이르러 고즈넉해진다.
목계나루는 조선 후기의 5대 하항이었으나 1920년대에 충북선 철로가 개통되면서 하항의 기능을 잃고 쇠락해갔다. 전성기에는 800호 넘는 취락지로 100여척의 상선이 동해의 생선과 영남 산간지방의 화물과 충주, 단양, 제천 등지의 세곡을 마포로 수송하는 한강수계의 중요한 항구였던 곳이다. 마포에서 소금배나 짐배가 들어오면 장이 섰다. 장은 사흘이나 이레씩 섰고 장터는 늘 흥청거리기 마련이었다.

쇠락한 목계나루는 좀은 쓸쓸하고 안쓰럽고 허허롭다. 골목에 자리 펴고 앉아 아낙들을 불러 세우던 방물장수는 보이지 않는다. 왁자하게 흥정하고 다투고 고함치던 사내들도 볼 수 없다. 객주집 아낙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수석가게와 인형극공연장과 슈퍼와 주유소와 미장원과 횟집과 식당들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을 뿐 옛날의 정취는 사라지고 없다.


쇠락한 가을볕이 목계나루를 비스듬히 비추고 있고 소슬한 바람이 골목을 스쳐지나간다. 나는 문득 서러워져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를 소리내어 읊는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하고/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산허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민물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이쯤이 혹 '민물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일는지 모른다고 생각한 나는 허름한 민물매운탕집 문을 민다. 창 너머로 목계강이 보인다. 목계강은 야위어 있다. 야윈 강물 위로 가을볕이 내려앉는다. 물비늘이 바늘을 쏟아놓은 것처럼 반짝인다. 눈부시다. 목계강물이 돌아나가는 곳의 강폭이 넓고 조용하다. 숨차게 달려온 물길도 이제는 좀 쉬고 싶은가 보다.

급류처럼 살아온 날들이 가슴에 솟구친다. 강물처럼 유장해보지 못한 삶이었다. 뒤돌아보면 쫓기듯 하루하루를 살아온 날들이다. 사유의 진솔함과 관조의 여유로운 삶을 살아오지 못한 지난 날이 사무친다. 강물을 오래도록 본다. 되돌아 올 수 없는 물길을 경건한 마음으로 보낸다. 사는 것이 강물과 같다.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이다. 강물이 머무는 곳에 산그림자가 잠긴다. 산그림자가 깊어진다. 가을볕이 강물 위에, 산등성이에 내려 앉는다. 강도 산도 한결 가벼워진 듯 하다. 구름도, 바람도, 들꽃도 될 수 없는 나는 떠돌이는 될 수 있을 듯 싶다.

/김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