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진리·학문 탐구 지성의 전당
민주화 후 설립 쉬워져 우후죽순
본질 퇴색 부 축적 수단 변질
교육부는 취업률로 대학평가
예술·문학·사학 사라질 판
구조조정·퇴출로 본모습 찾아야


상아탑이란 세속적인 생활에 관심을 갖지 않고 예술지상주의 입장을 취한 19세기의 프랑스 낭만파 시인 알프레드 비니를 평론가 생트뵈브가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사용한 말에서 비롯되었다. 그 후로는 대학 또는 대학의 연구실을 지칭하는 말로 전용되었고 현실과 거리를 둔 정신적 행동의 장소라는 개념으로 유럽 대학들이 상아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말인즉 대학은 학문을 탐구하고 국가와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연구를 하도록 하는 공적인 기관인 것이다. 당장 눈앞의 돈벌이를 목적으로 취업할 직장인을 찍어내는 수단이 아닌 것이다.

대한민국의 근대적 형태를 갖춘 대학은 일제 강점기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곤고히 하려 세운 경성제국대학을 비롯해 연희전문 보성전문 이화학당 혜화전문 등이 시작일 것이다. 대부분 일제의 교육억제와 탄압으로 전문학교로 시작해서 일제강점기 후에 연차적으로 대학으로 승격하게 된다. 한국전쟁 전 20여개의 국립 사립대학이 전쟁 후 70여개로 늘었고 민주화 후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우후죽순 대학의 수가 마구잡이식으로 불어나 현재 300여개가 넘는 대학이 들어서 있다. 학령인구의 증가와 재수생의 사회문제 특히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교육열이 대학의 양적팽창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었지만 질보다는 양적으로만 늘어난 우리의 대학문제는 커다란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뇌관이 되고 있다. 실제로 대학을 나온 고학력 실업자는 늘어나고 고등학교 졸업수준의 노동력은 매년 3만명 정도가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대학은 식민지를 겪고 전쟁을 넘어 개발시대에 우리에게 무엇이었고 지금은 또 무엇인가! 필자가 유년시절을 보낸 60, 70년대에 어머니는 내게 흥얼거리듯 습관적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나오고 판검사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전쟁으로 최악의 빈곤국가가 되어서도 자식들에게는 교육을 시키고 당신들은 굶어서라도 대학을 보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세계적인 교육열이 대한민국을 최단시간에 세계적인 국가로 만들어낸 초석이 되었다. 하지만 그 시기 대학은 지금처럼 수적으로 많지 않았고 상아탑의 본래의 모습인 지성의 전당으로 진리와 학문을 탐구하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대한민국에 독재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민주적인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질적인 발전을 이루어야할 대학이 이상한 쪽으로 변화되었다. 대학의 입학정원이 자율화되고 대학 설립이 쉬워진 틈을 이용해 대학주인들이 사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득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리와 학문을 탐구하는 상아탑의 본질은 퇴색되고 대학이 잉여자산을 축적하여 부를 누리고 사업에 눈을 돌려 장사를 하고 교육부는 한 술 더 떠서 대학의 우수평가를 연구 실적이나 기초학문의 사회적 기여 대학의 사회적 봉사 등을 고려하지 않고 취업률이나 충원율이라는 도식적 평가를 앞세워 정부의 정책 잘못으로 벌어진 상황들을 숫자놀이로 들이대 구조조정하려 한다. 저질대학이 널려있는 이 시점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퇴출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4대보험이 적용되는 취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예술과 인문학분야 조차도 취업자 수를 들이대며 대학을 위협하고 있다.

이 사회에 예술이 사라지고 문학과 철학 사학이 사라지는 꼴을 보고 싶은가! 전 근대적이고 원시적인 정책을 벗어나야 이 나라가 풍성해지고 문화강국이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면 하루라도 빨리 대학의 개혁 및 지원정책을 다른 각도에서 재고해야 할 것이다. 대학은 취업학원이 아니다. 대학들도 교육부의 정책에 말리지 말고 대학 본연의 자세인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진리의 탐구와 학문의 연구를 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세계 꼴찌의 출산율을 보이는 나라, 이제 다시 고등학교를 취업전면에 두고 대학은 과감한 구조조정과 퇴출을 하고 본래의 모습인 상아탑으로 돌아가야 한다.

/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