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평화'를 파괴하는 100년전
과오를 재현해선 안된다
이웃국가들 목소리를 외면하고
막무가내 우경화를 고집한다면
한일관계에 미래는 없을 것이다
17년 전 일본 유명 사립대학인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학생들의 한국 교류 모임에 회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일본에 관해서는 역사교과서를 통해 배우고 방송에서 보았던 이미지만 가지고 있을 때였다. 일본학생들과의 첫 대면은 어색하기도 했지만 충격의 연속이었다. 당시 교류 프로그램은 한일 관계의 민감한 부분까지도 숨김없이 토론하는 자리였다. 프로그램 일정에는 일본학생들과 함께 독립기념관을 방문하고 판문점을 동행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대체로 한국학생들은 과거사와 관련된 예민한 토론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반대로 일본학생들의 반응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놀라운 표정들이었다. 이 모임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과거와 일본이 생각하는 과거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우리는 일본과의 과거관계에만 치중한 나머지 현재와 미래의 일본에 대해 놓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며칠 동안의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정확히 몰랐던 일본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선명하게 느껴졌고 '일본은 있다'였다.
최근 일본 아베 총리의 우경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10월 26일은 '한일 강제 병합'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안중근 의사가 처단한 지 10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이웃국가를 강점하고 '동양평화'를 파괴한 행위에 대해 단죄한 것이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역사적 도발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도 없고 부끄러운 역사를 자국민들에게 교육하지 않는 것이다. 천황을 비롯해 많은 일본 지도층들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는 스스로 이를 부정하고 있다. 다수의 역사교과서가 제국주의적 시각으로 왜곡을 일삼아도 수수방관한 것이다.
둘째로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웃국가에 대한 진정한 우호의 정신이 털끝만큼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통곡의 역사를 극복하고 새로운 한일관계를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우리 사회의 여러 반발을 무릅쓰고 일본 문화 개방 조치를 취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가장 민감한 독도문제를 건드리며 첨예한 대립의 길로 나서고 있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 곳곳을 유린하고 수탈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역사를 통째로 재편집할 야욕마저 내비치는 것이다. 그 정점에 일본정부가 내놓은 독도여론조사가 있었다. 결과는 일본국민의 60% 이상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인식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조사는 설문조사의 가장 기본인 표본의 대표성과 설문의 객관성을 원천적으로 도외시한 자료였다. 이러한 의도적인 일본정부의 자세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이다. 셋째로 아베 총리의 막무가내 우경화가 지속될 경우 한일관계에 있어 미래는 없다. 지난 3월과 4월 미국의 퓨리서치 센터가 실시한 조사결과를 보면 일본국민들은 아베 총리에 대한 호감도가 71%였지만 우리 국민들은 '혐오한다'가 85%였다. 1990년대 후반처럼 한일관계가 퍽 괜찮았던 적도 있었다. 한일관계에 있어 일본 지도층의 태도와 인식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당연시하고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누출이 주변 국가에 피해를 끼침에도 무사안일하다면 한일관계를 더 발전시키기는 힘들 것 같다.
한일관계가 비뚤어진 데에는 우리의 책임도 크다. 만약 우리가 단순히 반일(反日)이 아니라 극일(克日)할 수 있는 국력과 대외적 위상을 갖추고 있었다면 이렇게 되었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안중근 의사가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며 의거했던 것이 불과 104년, 대한민국의 소중한 영토인 독도에 대한 고종의 칙령이 선포된 지가 113년밖에 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복잡하게 얽힌 두 나라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미래 지향적인 발전을 지향해야 한다. '안중근 의사'가 의거를 일으킨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동양평화'였다. 아베 총리는 자국 내 인기를 의식하여 '동양평화'를 파괴하는 100년 전의 과오를 재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이웃 국민들의 비장한 목소리를 외면하고 그릇된 우경화의 길을 고집한다면 친구로서의 일본은 없을 것이다.
/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