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에서 현재까지 5천년을
단숨에 뛰어넘고 지구 끝이라도
순식간에 연결해 주는 통로다
한국인은 꿈을 이룰 줄 아는
창조적 민족, 이제 무슨꿈을 꿀까
아프리카에 머물며 연구를 하던 서양의 한 인류학자가 어느날 아침 소란스런 소리에 잠을 깼다. 옆집에 살던 원주민이 빌려간 닭을 내놓으라며 야단법석을 떨었던 것이다. 그는 "어젯밤 꿈에 자기에게서 닭을 빌려갔으니 돌려달라"고 했다. 이 원주민에게 꿈은 현실과 구별되지 않는 세계였던 것이다.
중국에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이란 멋진 고사성어가 있다. 하지만 남가일몽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의 꿈'에 비한다면 그 스토리로나 교훈적 의미로 봤을 때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조신의 꿈 이야기는 인생의 허무를 주제로 한 '꿈의 문학'으로서 한국에서는 그 원조가 되는 설화다. 승려 조신이 속세에 있는 김 태수 댁 규수를 보고 반해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 속에서는 그녀와 40여년을 같이 살며 자식을 다섯이나 두었으나, 살림은 몹시 가난해 나물죽조차 넉넉지 못했다. 그러다 15세 된 큰 아이는 굶어죽고 말았다. 조신이 깜짝 놀라 꿈을 깨고 보니, 날은 이미 저물어 밤이 이슥히 깊어가고 있었다. 인생의 덧없음을 깨달은 조신은 그뒤로 김랑에게 반했던 마음을 깨끗이 씻고 불도(佛道)에만 힘썼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민족에 면면히 내려오는 '단군신앙'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꿈의 힘이었다. 솔거가 단군화상을 그릴 수 있었던 것도 꿈속에서 단군할아버지를 봤기 때문이고, 정훈모 선생이 단군석상을 구월산에서 모셔왔던 것도 꿈을 꾼 결과였다. 또 계룡산 일대에 있던 단군전 역시 모두 꿈을 통해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 이진탁 선생은 아동들의 훈학에 힘쓰다가 단군의 현몽을 얻어 작산에 최초의 단군전을 지었다. 해방후 남예훈 여사는 단군의 현몽을 얻어 단군전을 착공했고, 꿈에 보았던 모습대로 영정을 그려 모셨다. 그 뒤에는 대전의 한학자 조병호 선생이 꿈을 꾸고 그 날로 보령 성주산에 가서 환인 환웅 단군의 석상을 찾아서 모시기도 했다.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사찰의 건립 내력을 살펴보면 청신남녀(淸信男女)들의 소박한 꿈에서 비롯한 것들이 많다. 1천500년을 건너 뛰어 은산의 별신제가 부활한 것도 어느날 부락민이 꾼 백제 장군의 꿈 때문이었다. 이런 특별한 동제(洞祭)뿐 아니라, 동네 어구나 강가 언덕에 자리잡은 성황당이나, 해신당의 내력도 대부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꼭 이렇게 거창한 꿈이 아니더라도 가끔 "무슨 일 없냐? 간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해서…"라며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 모든 어머님의 꿈은 신통력을 갖고 있어서, 부처님이나 적어도 도사 수준은 된다.
꿈에서 신선이나 학자를 만나 일가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 6·25 전쟁 중 한 학자의 집에 피란민이 찾아와 그에게 행랑채를 내주었는데, 간간이 글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주인이 유심히 들어보았는데, 이전엔 못듣던 글소리였다. 집주인이 "무슨 글을 읽으십니까?"하고 묻자, 행랑객은 "허허 도련님은 이런 글을 잘 모르실 겁니다. 자미두수란 역학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평소 경서만 읽던 주인은 자못 궁금했다. "그래 이런 글을 어떻게 배우셨습니까?" 그러자 행랑객은 "도련님은 믿지 않으시겠지만 밤마다 꿈속에서 하얀 도포를 입은 할아버지가 나와서 매일밤 자미두수를 저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꿈을 통해 저는 자미두수를 통달하게 됐습니다. 도련님도 간절히 원하면 실물을 얻든 꿈에서 얻든 실제로 감응이 일어납니다."
한국인들처럼 꿈을 많이 꾸고, 꿈을 믿고, 꿈을 사랑하는 민족은 없는 듯하다. 4강 신화의 기적을 보여준 지난 2002년 월드컵의 마지막 준결승 응원전에 등장했던 카드섹션은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꿈은 타임머신이다. 꿈은 단군에서부터 현재까지 그렇게 5천년의 시간을 단숨에 뛰어넘고, 지구끝이라도 우리를 순식간에 연결해주는 통로가 된다. 우리 한국인은 꿈을 이룰 줄 아는 창조적 민족이다. 이제 우리는 또 무슨 꿈을 꿀까?
/임채우 수필가·국제뇌교육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