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집권당과 야당의 대립은 그 자체로 자연스럽다. 또한 정치의 본질은 갈등의 표출이며 갈등을 제도화 한 것이 민주주의이다. 갈등을 여하히 집약시키고 제도화해서 최소화 하느냐에 정치력이 달려있다. 그러나 대선 이후 여야의 대립은 건강한 갈등과 대치의 수준을 넘는 것이다. 대선 국면에서 불거진 대화록 유출 의혹, 남북정상회담에서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여부, 대화록 공개를 둘러싼 갈등으로부터 검찰총장의 사퇴 파동 등 국면과 현안을 달리하면서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 속에서 공히 여야가 정파적 계산하에서 행위하고 정쟁으로 연결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국가 기관들의 일탈 행위에 대한 문제 제기를 정쟁으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일련의 정치적 쟁점의 본질은 국정원의 댓글과 트윗 등 여론 조작 의혹이며 이것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느냐의 여부이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외압설이 제기되고, 검찰총장과 특수수사팀장의 사퇴 및 경질이란 사태도 불거졌다. 각종 사안의 본질이 가려지고, 사실 관계의 규명이란 명분으로 진실이 호도되어서는 더욱 안된다.

정홍원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의 형식을 빌려 박근혜 대통령은 지루하게 이어지는 정쟁적 측면의 해법을 제시했다. 총리의 대독(代讀)형식을 논하기 앞서 내용에서 진전된 바가 없다.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챙기는데 협조해 달라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국정원 댓글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구조 개혁 등의 현안들을 정쟁으로 보는 관점에서 사태 해결의 단초를 찾는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다.

청와대의 인식이 바뀌지 않고, 최고 권력의 의중과 심기를 살피는 무력한 집권당의 존재가 계속 된다면 총리의 담화에서 밝힌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더라도 정국 대치와 민생 챙기기는 요원해질 수 있다. 여야의 시국을 보는 인식의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야당의 문제 제기를 정치적 공세로 보고, 정쟁으로 치환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전향적으로 사태의 본질에 접근해야 한다. 국회 의석 반수를 넘는 집권당이 국민의 대표자격으로 청와대에 정국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촉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야당에게도 정쟁적 요소를 삼가고, 대선 불복으로 비칠 수 있는 발언과 행동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해야 한다. 그리고 야당을 대선 불복 프레임으로 가두려는 시도를 접어야 하고, 야당도 헌법 불복 프레임으로 여당을 몰고 가려는 자세를 중단해야 한다. 두 프레임은 공히 설득력도 없고, 효력도 없는 지극히 정쟁적 요소와 다름 없기 때문이다.

정권 출범 8개월이 넘도록 한 치의 진전도 없는 지루한 공방의 터널을 벗어나고, 여야 정치인들의 진부한 '민생' 주장이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당이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는 비판적 성찰에 근거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밝혔듯이 박근혜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에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고, 받지도 않았다. 국정원의 댓글 공작 의혹도 지난 정권의 일이라는 데도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정권의 일탈 행위를 호도하려 하거나, 행여 수사의 축소나 은폐에 대해 방조하거나 암묵적으로 묵인하는 순간 이는 현 정권의 과오로 치환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런 귀책 사유가 없는 정권이 국정원 등 국가기구들의 여론 조작 의혹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현재 나타난 정황 증거들을 바탕으로 책임자 처벌과 국정원 개혁 등에 대해 원론적 수준이나마 의지를 보이고, 포괄적인 차원에서 유감을 표명할 때 사태 해결의 단초가 보인다. 여권의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정치적 공세로만 일관한다면 역풍은 야당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상식이다. 해법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해결의 키는 여권이 가지고 있다. 대선 불복 논란이 정치적 쟁점화한다는 사실 자체가 납득되지 않지만, 이것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정국에 대한 반증(反證)이다. 또 다시 집권 1년을 정쟁으로 허비할 것인가.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