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현대 도시인은 구성원간 대화가
줄어들어 신뢰도가 하락하고
공동체의식도 형성 안된다
이젠 비생산적 냉소를 거둬내고
마을·고장·동네 제대로 갖추는
일을 삶의 첫과제로 삼아야 할때


공동체 삶에 대한 언급이 점차 늘고 있다. 아예 공동체 혹은 코뮨이란 이름을 달고 일상을 영위하는 곳까지 생기고 있다. 그에 대한 이론도 늘뿐 아니라 정교해지고 있다. 그런 현상이 주목받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우리 삶이 공동체와 거리가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와 비슷한 말에 속하는 고장, 마을, 동네 등의 단어는 사라지거나 혹은 그 함의를 바꾼 채 존재하고 있다. 고장이란 말은 사라진 듯하고, 동네란 말 속엔 '잠자는 곳' 정도의 함의만 담겨 있을 뿐이다. 결핍된 것에 대한 욕망의 결과로 우리는 오매불망 건강하고 이상적인 공동체를 갈구하고 있다.

한국 사회보다 더하진 않겠지만 대체로 많은 나라들에서 이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시작했다. 사회가 선진제도를 갖춘다 하더라도 과거보다 그 운용이 원활치 않음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 공동체 의식이 담기지 않으니 좋은 제도조차도 빛을 좀체 보지 못함을 깨닫고 있다. 그래서 이웃한 사람들끼리 동네 걱정을 나누는 일이 점차 줄고 있음에 주목하게 되었다. 최소한으로 이웃을 사귀는 것에 그치고 당장의 이익이 개입되지 않으면 외면해버리는 개인주의적 습속이 주요 일상으로 자리잡았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공동체 문제를 낭만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당장의 삶을 윤택하거나 피폐하게 만드는 현실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홀로 볼링'이란 책을 통해 로버트 퍼트남은 공동체 문제가 얼마나 절실한 현실 문제인지 알리고자 했다. 미국의 대부분 마을 어귀에는 볼링장이 있었다. 그곳은 늘 사람들로 붐비던 사교장이었다. 공을 굴리고 맥주를 나누며 마을 걱정도 하고, 서로 안부를 묻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그곳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볼링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뿐만 아니라 혼자 볼링 치는 사람도 늘었다. 퍼트남은 이 같은 현상을 '사회적 자본'의 감소라고 보았다. 널리 사람을 알아 생활을 도모하는 일이 줄었다는 것이다. 미국을 지탱해주던 힘이 동네 이웃 간의 신뢰, 협조였고 큰 사회적 자본이었지만 이젠 더 이상 그렇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사회의 침체는 경제나 정치제도에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 제도가 원활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자본이 감소했음에 원인이 있다고 퍼트남은 파악했다.

퍼트남이 강조한 사회적 자본의 기본 바탕은 신뢰와 호혜성이다. 이웃 간에 신뢰가 쌓이면 서로 혜택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형성되고 그럼으로써 서로 돕기 위한 실천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그 실천이 거듭되면 자연스레 사회적 자본이 쌓인다. 그를 통해 진정한 공동체라는 범주가 가시화될 수 있다. 공동체 형성을 위해선 신뢰와 호혜성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접하고 나면 그 다음엔 신뢰와 호혜성을 길러내기 위한 방법에 대한 질문이 나오게 마련이다. 퍼트남이 볼링장에 주목했던 것은 그곳에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말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공간이다.

현대 도시 내에서 구성원간 대화가 줄어든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화가 줄어듦에 따라 신뢰와 호혜성도 동반 하락하게 마련이고 궁극적으로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지 못한다는 사실에도 대부분 동의한다. 그럼에도 공동체의 상실을 한탄하는데 익숙할 뿐이다. 그 공동체를 구하는 데는 선뜻 팔을 걷어붙이지 않는다. 도시의 공동체는 파편적이어야 마땅한 것처럼 여기거나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단정 짓는 일에 익숙하다. 몇몇 지자체에서 '마을 만들기'를 주요 과업으로 내걸었을 때도 그런 냉소가 강했다. 사회적 자본을 키우고, 공동체 형성을 도모하는 일은 지역민들이 살아가는데 최고의 가치여야 함에도 정작 우리는 그를 잘도 비켜갔다.

미국이 볼링장의 상실을 아쉬워하는 만큼 우리도 사랑방이나 동네 마실의 소멸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옛 풍속에 대한 낭만적 기억 탓만은 아니다. 더 편한 삶을 위해서는 대화, 그를 기반으로 한 신뢰가 필요하고, 그럼으로써 마을 공동체의 형성이 이뤄져야 함은 우리 모두가 절감하고 있다. 결코 더 늦추어선 안 될 과제다. 비생산적 냉소를 거두고 마을, 고장, 동네 제대로 갖춰보는 일을 삶의 첫 번째 과제로 삼아야 할 온 사회의 화두다.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