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듯 마는듯한 연기 초점
연기력 한계 위기 느꼈을 때
'박쥐' 촬영하며 자신감 회복
할리우드 진출은 생각 안해
"예쁘고 여성스런 캐릭터는 끌리지 않아요. '그런 역은 누군가 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좀 더 강렬한 캐릭터에 끌리는 것같아요. 성격인 것 같습니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열한시'에 출연한 김옥빈(26)의 말이다.
'열한시'는 동료가 죽고, 연구동이 불바다가 되는 미래를 목격하고 온 우석(정재영)이 불행을 막고자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은 스릴러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김옥빈은 비밀을 간직한 과학자 영은 역을 맡았다. 극이 진행될수록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내야 하기에 톤 조절이 관건이었다.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어요. 감독님은 연기하지 말고 그냥 가만있어 달라고 했어요. 알듯 모를듯한 속내를 보이지 않는 얼굴을 말이죠.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카메라 앞에서 어떤 표정이든 지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거든요. 하는 듯 마는 듯한 연기를 하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영화는 죽음이라는 정해진 미래에 다가갈수록 인물들이 미쳐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할리우드 영화라면 그 과정에서 다양한 갈등 상이 분출될 테지만 '광식이 동생 광태'(2005),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등 멜로·로맨틱코미디로 주목받은 김현석 감독은 사랑과 증오 등 멜로적인 감수성을 스릴러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감독님이 제게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저라고 말했어요. 영화의 끝 부분을 보면 그렇다면서요. (웃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멜로의 느낌이 거의 나지 않았는데, 감독님의 손을 거치면서 달콤한 느낌이 나게 된 것 같아요. 멜로 전문 감독님이잖아요." (웃음)
지난 2005년 '여고괴담 4' 목소리로 데뷔한 후 10여 편의 영화를 찍었지만, 드라마에도 가끔 얼굴을 내밀었다.
최근에는 KBS 드라마 '칼과 꽃'으로 7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했다. 그러나 성적이 좋진 않았다. '칼과 꽃'은 5.8%의 시청률로 쓸쓸하게 퇴장했다.
"시청률이 좋지 않았던 것 빼고는 다 좋았던 것 같아요. 동료 연기자들과도 너무 친해졌고, 무엇보다 저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7년 전에는 드라마 연기가 너무 힘들어서 매일 울었어요.
앞으로 못하게 될 줄 알았죠. 그런데 7년 만에 드라마를 하니까 좀 쉽더라고요. 물론 울지도 않고요. (웃음) 어느 순간 '이젠 철없이 울던 철부지가 아니네…김옥빈 너 참 기특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누구나 그렇듯 데뷔하기 전 꿈많던 소녀였다. 운동을 잘하다 보니 경찰관이 될까 고민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하늘을 날아다니는 린칭샤(임청하·林靑霞)를 본 후 모든 게 달라졌다. '동방불패'(1992)의 린칭샤 같은 배우가 되고 싶었다.
"임청하를 보고 TV에 달라붙었던 기억이 나요. 언젠가 저런 사람이 될 거라고 꿈을 키웠죠. 그러다가 열아홉 살 때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서 연기에 도전했어요."
이른바 '얼짱' 출신 연기자로, 그의 연기 인생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지만, 수년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연기력에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카메라가 두려워 연극을 할까 고민하던 시절, '박쥐'(2009)의 시나리오가 가뭄 속 단비처럼 문득 찾아왔다.
"시나리오가 정말 과감했어요. '태주'라는 캐릭터 속에는 온갖 감정들이 다 들어가 있었어요. 태주를 제대로만 해낸다면 못할 연기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해야 해'라고 다짐했어요."
예상처럼 '박쥐'를 찍으면서 그는 자신감을 많이 회복했다. "고민했던 결과를 선배님과 감독님이 인정해주니 재능이 없진 않나 보다"고 당시 생각했다. 그가 '박쥐'를 연기 인생의 분기점으로 보는 이유다.
이처럼 연기 인생에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그는 아직 꿈많은 스물여섯 살이다. 지난해 1월에는 펑크 록밴드 '오케이펑크'를 결성해서 활동했고, 요즘은 여행에 취미를 붙였다. 조만간 유럽으로 떠날 생각에 벌써 마음이 부풀어 있다.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던 '박쥐'에서 호평받았기 때문에 해외 진출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할리우드 진출에 대해 물어보니, "나는 꿈이 작은 사람, 그런 생각은 안 해봤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