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평군 양동면 삼산리와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판대2리 경계에 자리잡은 VIP종합레저타운. 빨간 점선을 기준으로 왼쪽이 경기도, 오른쪽이 강원도이다. 동일 시설이 두 자치단체로 나뉘어 행정·치안공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종택기자
稅다툼 지자체·票눈치 단체장
수십년 동안 기형적 상태 방치
행정·치안·소방 공백 등 양산


우리나라의 행정구역은 대부분 산과 하천 등 자연환경을 경계로 자연스럽게 구분됐다.

정치적·역사적 이유로 일부 인위적 조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대다수가 수백년 세월을 이어져 내려오며 각각의 생활권과 역사성을 형성해왔다.

그러나 급속한 현대화 과정에서 택지개발·도시개발 등으로 인해 기존의 행정구역 경계가 뒤흔들리기 시작했고, 정부와 지자체들이 서로 손을 놓고 어물쩍거리는 사이 곳곳에 기형적 형태의 행정구역이 오랜 시간 방치돼 왔다.

사방이 다른 시군으로 둘러싸여 '섬'처럼 고립된 지역이 나타나는가 하면, 한 아파트 단지가 서로 다른 시군으로 나뉜 웃지 못할 사례도 적지 않다.

심지어 한 건물이 2개 시군으로 나뉜 경우도 있다. '게리맨더링'에 이어, 가히 '거버맨더링(Governmandering)'이라 불러도 좋을 '괴물'이 돼버린 것이다.

이처럼 기형적으로 나뉘어 방치된 행정구역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해당지역 주민들이 고통과 불편을 강요받고 있다는 점이다.

코앞에 학교를 두고 몇㎞ 떨어진 곳으로 자녀를 통학시켜야 하고,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기도 한다. 행정상의 불편을 넘어 치안과 소방 등 안전문제에서도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해당 지자체들은 이해득실만 따지며 서로 제목소리를 고집하고 있다. 민선 단체장들은 표를 의식해 합리적 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애써 귀를 막고, 같은 지역내에서조차 지자체와 의회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경인일보는 기형을 넘어 괴물이 돼버린 '거버맨더링' 행정구역의 실태와 현상을 긴급 진단하고, 그로 인해 파생된 문제점과 원인, 합리적 대안을 모색해 본다.

■ 한 가족 두 지붕, 한 건물 두 지자체

지난달초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판대리 (주)VIP종합레저타운으로 수련회를 간 안양 A야구동호회 회원 20여명은 뜻하지 않게 '슈퍼맨' 체험을 했다.

오전 도착 직후 경기도 양평에서 야구경기를 한 회원들은 강원도 원주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다시 경기도 양평의 야구장에서 오후 경기를 마친 이들은 곧바로 강원도 목욕탕에서 사우나를 하고, 저녁엔 다시 경기도로 돌아와 캠프파이어와 바비큐 파티를 즐긴뒤 원주에 위치한 숙소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1박2일의 짧은 수련회 동안 이들이 이처럼 초인적(?)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던 건, 이 레저타운을 가로지르는 우스꽝스러운 행정구역 경계 때문.

전체 면적 1만3천200㎡ 규모의 이 레저타운은 시설 복판을 'S'자 형태로 가로지르는 폭 1.5m 남짓한 인도를 경계로 경기도 양평과 강원도 원주로 나뉜다.

레저타운 면적의 70%를 차지하는 인도 아래쪽 양평에는 야외 시설인 놀이터와 호수, 캠핑장, 야구장 등이 들어서있고, 반대편 강원도 원주에는 본부 사무실과 수영장, 콘도, 가든, 찜질방, 세미나실, 식당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 시설의 공식 주소는 강원도 원주시다. 본부 사무실이 인도 위편 원주쪽에 있기 때문이다. 레저타운측은 지난 1997년 강원도 원주시에서 건축허가를 받았고, 현재까지 시설의 관리감독도 원주시에서 받고 있다.

하지만 이 레저타운으로 들어가는 길은 88번 지방도 양평 삼산리 지점에서 이어진 1㎞ 가량의 진입로가 유일하다.

관할 행정기관인 원주시 공무원들도 경기도를 넘어와야 시설 진입이 가능하다. 레저타운이 조성된지 20년이 다 돼가지만, 원주시 담당공무원들의 방문은 손꼽을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치안 서비스다. 가까이 7㎞ 남짓 떨어진 곳에 양평경찰서 양동지구대가 있지만, 정작 이 곳 관할은 13㎞나 떨어진 원주경찰서 문막파출소다.

전화선 역시 경기도에서 연결해 경기도 지역번호 031을 쓰고 있다. 강원도 경계 안쪽을 가로지르는 삼산천 쪽으로 전화선 연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강원도 원주시는 행정구역 변경 요청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멀쩡한 땅을 빼앗기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간 수천만원의 지방세 역시 행정구역을 양보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조동렬 VIP종합레저타운 회장은 "연간 꼬박꼬박 5천만원이 넘는 세금을 내고 있는데 관청의 행정지원은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양평군과 원주시에 수차례 경계 변경을 요청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김대현·서인범기자

■거버맨더링(governmandering)

행정구역이 지역간 이해관계·행정편의 때문에 기형적인 형태로 분할된 것. '행정·통치(government)'와 '도마뱀(salamander)'을 합친 말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부자연스럽게 획정하는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gerry+salamander)'을 본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