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채우 수필가·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
판단력 부족한 어린 학생들에게
게임 즐길지 말지 선택하라는건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고
건강한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최근 신문지상과 TV에 게임중독법 문제가 화두가 되었다. 천만명이 넘는 인구가 알코올 도박 마약 인터넷 중독 등에 빠진 중독 고위험군이라고 하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거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장식하던 도박이나 마약 사건 정도는 이제 인터넷게임 중독 사건에 밀려서 아예 기사화되지도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40년 전에도 전자오락이란 게임이 있었다. 필자가 고등학생이던 1970년대 중반 지방 도회지의 번화가 귀퉁이에 오락실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기껏해야 17인치 흑백TV를 보던 시절, 대형 화면 위에서 푸른 창공을 날아다니는 비행기 공중전 '전자오락'은 시골 소년에겐 그야말로 놀라운 신천지였다. 다음날부터 들락날락하면서 한 달 용돈을 며칠 만에 다 탕진했지만, 적기의 꼬리를 물고 공중제비를 돌면서 기총사격을 가하면 굉음과 함께 적기가 폭파되던 순간의 짜릿한 느낌은 뭐라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마지막 코인까지 다 털어넣고 난 뒤에 오락실문을 나서는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이전에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기계문명의 쾌락은 맛보았지만 어린 나이에도 이건 아니다라는 느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인터넷게임은 이보다 훨씬 강렬한 쾌감을 주는데다가, 누구나 어디서나 바로 접근할 수 있다는 데에 문제는 심각성을 띤다. 중독은 이성적 판단력을 잃고 황홀상태에 빠뜨린다.

그러나 중독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단순하지만 한번 건강한 중독과 불건강한 중독으로 구분해보자. 요즘 문제가 되는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은 불건강한 중독들이다. 기계가 주는 쾌락에 빠져서, 사이버공간과 현실세계를 혼동하며 돌이킬 수 없는 파탄에 빠지는 게임 중독은 불건강하고도 나쁜 중독이다. 얼마 전 TV토론장에서 어느 학부모가 그 잔혹하고도 절망스러운 실상을 통곡하면서 고발하는 것을 보았다. 어둔 골방에 처박혀 가상의 세계에 빠져버린 채 이미 눈동자가 풀려버린 아들을 지켜보아야 하는 학부모의 울부짖음을, IT산업 육성이라는 미명하에 그리고 현행 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명분하에 가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

오죽하면 소련의 과학기술자들이 서방세계를 타락시키기 위해 전자오락 게임을 만들었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이 말을 그저 항간에 떠도는 음모론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블록격파 게임이 퍼지던 30, 40년 전에 나돌던 말이니, 그래픽이나 콘텐츠로나 지금의 인터넷게임과는 비교할 수준이 못 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왜 이런 말이 떠돌았던 것일까? 실정법의 테두리내에서도 얼마든지 인간을 파괴시키는 일이 가능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불건강한 중독에 비해 가수 김장훈씨가 기부천사나 독도지킴이로서 선행을 반복하는 것은 착하고도 건강한 중독이다. 계속되는 그의 선행 중독은 우리 사회를 한층 더 밝고 건강하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 또 생활의 달인이란 TV프로그램에 나오는 달인들도 자기 일에 몰두하다가 '착한' 일중독에 걸린 경우이다. 달인들은 고된 노동을 즐겁고 멋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들 보통 사람들도 사실 일종의 중독에 걸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중독되지 않았다면 어찌 똑같은 공간에서 조상대대로 살아가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단조로운 일을 평생 반복할 수 있겠는가? 어느 정도의 습관성 중독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습관을 넘어 중독에 이르는 과정을 잘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그러나 중독은 대단히 위험해서, 자칫 방심하면 손을 베이는 양날의 칼과 같다. 아직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 학생들에게 게임을 즐길지 말지를 스스로 선택하라고 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놓고 먹지 마란 격이니,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이것은 정당한 이윤추구나 자유의 이념과는 또 다른 문제이며, 시장의 논리에 맡길 수만도 없는 문제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음습한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보다 적극적으로 건강한 습관을 갖도록 구체적 대책을 강구할 것을 정부 당국에 촉구한다.

/임채우 수필가·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