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중소기업을 살려서 한국경제를 도약시키자고 말하면, '대기업의 주도력을 빼앗자는 것이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중소기업을 키우다가는 대기업이 쌓아 온 기업가정신을 낮출 수 있다고 말하는 편견도 나온다. 아마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서로 제한된 자원을 나누는 경쟁자로 생각하는 듯싶다. 그런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이해이다. 중소기업을 육성하자는 것은 대기업을 버리자는 뜻이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를 이해관계의 충돌이라는 대립으로 보는 것은 불필요한 이념 과잉의 하나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반목과 경쟁의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서로 동일한 목표를 향해 가는 전우(戰友)이다. 분명하게도 한국경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이라는 양대 축(軸)이 살아나야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한국경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대기업 중심으로 꾸려왔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위상을 높이자는 주장에 염려가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 쪽의 혁신 없이는 이제 경제발전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현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말할 필요도 없이, 중소기업들이 만드는 부품에서부터 혁신이 발생해야 대기업의 경쟁력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즉, 창조적인 스마트폰 부품 없이 대기업이 주도하는 스마트폰 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는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호흡을 맞춰 탱고를 추는 협력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대기업의 성장이 중소기업을 견인하기도 할 것이며, 다른 경우 중소기업의 혁신이 대기업의 성장을 견인하게도 될 것이다.

글로벌 시장 판세를 볼 때에도 부품소재 영역의 강소(强小)기업들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독일 경제가 '히든 챔피언' 기업들을 토대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 히든 챔피언 기업들은 부품·소재를 취급하기 때문에 대중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상당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가진 중소기업들인데, 그들의 창조적 역량에 의해 국가경제에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지금부터의 중소기업 육성은 우량 중소기업들의 실력이 쭉쭉 뻗어나가야 한다.

강소기업을 키울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강소기업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하청관계도 변화해야 한다. 한국경제는 조립 산업에서 강했었는데, 그 성장 과정에서 중소 부품업체들은 대기업이 구축한 먹이사슬의 하단에 위치했었다. 강소기업은 그 하청구조에 종속되지 않고 글로벌 시장을 상대하는 독립전문기업이 되어야 한다. 달리 표현하면 강소기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범용 기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술력을 가져야 독립전문기업이 될 수 있다. 이런 수준에 올라야만 대기업에게 동급의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강소기업이 늘어나게 되면 한국경제는 변하게 될 것이다. 생물학에서는 생태계 조건을 바꾸는 종(種)을 '생태공학자'라고 부르는데, 강소기업들이야말로 한국경제에서 생태공학자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종이다. 강소기업들의 성공은 다른 중소기업들의 모델이 될 것이며, 결국 중소기업 전체로 혁신성이 퍼지는 효과를 만들어 낼 것으로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중소기업 정책에서도 새로운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중소기업에게 혜택을 늘려주는 정책에서 벗어나, 우량 중소기업, 즉 강소기업을 늘리는 정책에 눈을 돌려볼만 하다. 기존 중소기업 정책의 골격인 시혜적(施惠的) 입장을 다시 돌아볼 필요도 있다. 특히 첨단기술 중소기업들에게는 체질 강화를 할 수 있는 정책이 중요하다. 이들마저 나약하게 보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앞으로 중소기업 정책은 '시혜'와 '경쟁' 사이의 묘수풀이에서 성패(成敗)가 판명날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퍼즐이지만 일단 성공적으로 풀어낸다면, 우리가 그동안 쌓아 놓은 대기업의 경쟁력 위에 중소기업에서 성장한 강소기업의 힘에 추가되어 진정으로 강한 국가경쟁력을 만들어 낼 것이다. 중소기업을 키우는 가치는 이처럼 크다.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