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에 반할수 있다' 논리
국회 법안 논의조차 뒷전
서울시 '매뉴얼 제정' 대안
강제철거요건등 개정 지적
강제철거 과정에서 이뤄지는 인권침해 등을 막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지금은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관련법과 상충한다는 것이 논의를 이어가기 어려운 이유인데, 이 때문에 법률·제도적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 현재 법안과 문제점은
19대 국회에서 정청래(민·서울 마포구 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강제퇴거 금지에 관한 법률안'은 강제퇴거 과정에서 이뤄지는 인권침해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퇴거 요건과 절차 등을 규정하고 있다.
또 시장·군수·구청장이 강제퇴거 예상자에 대한 주거·생활안정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개발사업과 관련된 정보를 주민에게 제공하고, 추진할 때 주민 4분의 3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기존 법과 상충되는 부분이 많아 법 제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보상에 관한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나 강제집행과 관련된 '민사집행법'에서 규정한 강제철거 관련 조항과 해당 법안의 조항 내용이 충돌하는 것이다.
강제퇴거 요건을 강화할 경우 '공익'에 반할 수 있다는 논리도 나온다. 강제퇴거의 요건을 강화하면 개발을 지연시킬 수 있고, 개인의 재산권 행사를 제약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에 해당 국토교통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강제퇴거 시 거주민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제정안의 취지는 바람직하다"면서도 "재산권과 주거권의 균형 있는 보장,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개발사업의 필요성, 현행 개발 관련 법률들과의 상충 등을 고려하여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 대안은
서울시는 올 7월 비인권적인 강제철거를 막기 위해 '인권매뉴얼'을 제정했다.
해당 매뉴얼에 따르면 철거에 앞서 시설 등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충분한 협상기회와 정보를 제공하고, 철거 사실을 사전에 고지해야 한다.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시설 등에 대해서는 철거를 금지했다.
매뉴얼은 민간 기관이나 개인이 명도소송 등을 통해 강제철거를 하는 경우 등에는 구속력을 갖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법안 마련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강제철거로 인한 피해를 막는 기본적인 제도라는 의미가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매뉴얼은 강제퇴거 과정에서 인권침해나 피해를 예방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인천 등 다른 지자체에서도 이를 행정에 접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매뉴얼이나 조례 제정과 함께 강제퇴거의 절차 등을 규정한 법 제정이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대체입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강제철거나 도시개발 등과 관련된 현행법에 담긴 강제철거 요건·절차나 개발사업의 목적 등의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시 인권담당관실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가입한 인권관련 국제조약에서 강제철거 금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이를 국내법에 녹이는 방식으로 개정이 이뤄졌으면 한다는 것이 개인적 바람이다"고 말했다.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 안진걸 사무국장은 "우선은 강제퇴거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대체주거시설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에는 철거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등 현행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현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