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훈 대진대 행정학과 교수
다른 군사시설과 달리
위험성 크고 비선호 시설은
이전 결정을 공개해야 하고
후보지 결정후 마지막에
지역주민을 무마하려는
방식은 버려야 한다


경기도 사람들은 군사시설이 늘어나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군사시설이 들어서면 재산권 행사도 어렵고 지역발전도 더디게 되는데다 경기도에는 이미 군사령부 1개, 군단급 부대 7개, 사단급 부대 30개 등 전군의 약 40% 가량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원도의 횡성군에 있던 탄약고를 양평군 지평면으로 옮긴다고 한다니 반발이 없을 수 없다.

발단은 이렇다. 군은 지난 5월 양평군에 '59탄약대대 현대화사업'을 한다고 인허가 서류를 냈다. 하지만 사실은 횡성에 있던 탄약고를 옮기려 한 것이고, 제1군수사령관과 횡성군수가 참석한 기공식까지 열었다. 그 과정에서 양평군과 협의 한번 없었다. 그 뒤의 일은 뻔한 것이다. 지평면의 주민들은 이전저지비상대책위를 만들고 국방부와 횡성군에 항의하고, 양평군이 제 할 일도 못하고 있다고 압박했다. 양평군수와 군의회도 나섰고, 국방부는 주민들과 이제부터라도 협의하지 않고는 이전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지평리는 6·25전쟁 때 전황을 역전시킨 지평리전투로 유명한 곳이다. 1951년 당시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지평리에서 막느냐 못 막느냐에 따라 한국의 운명이 달려있었다. 1951년 2월 13일 밤 중공군은 3개 사단을 앞세워 원형진지를 구축한 미23연대(프랑스대대 배속)를 공격했다. 하지만 미군의 폭격과 적절한 지원군 투입으로 3일 간의 격전이 끝나자 진지주변은 중공군의 주검으로 넘쳐났다. 이 전투를 통해 유엔은 한국 국토 사수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했다(김국헌의 다시 쓰는 6·25 참조). 양평군 지평리에는 이를 기념하는 전적비가 있고, 주민들은 이를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축으로 알고 자부심을 가져왔다. 그런 곳에 우리 군이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군 탄약고는 지하형, 이글루형, 지상형 등의 3종으로 설계된다. 현재는 대부분 지상형인데다가 습기에 취약하여, 추진장약의 수명이 단축되고 있고 탄종특성별로 관리되지 못하기에 군은 탄약고 현대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군의 이런 방침과 맞물려 횡성군은 200억원(기부대양여사업)을 들여서라도 숙원이던 탄약고이전사업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군과 횡성군 모두 이전결정과 인허가를 얻어내기까지 양평군과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못했다. 인허가 절차시 양평군에 알렸다고 하지만, 관련 인허가를 얻기 위해 개발행위와 농지전용 협의는 생태개발과, 전기 통신은 총무과, 개인하수관 설치 신고는 환경관리과와 하수도사업소로 각각 공문을 보내는 등 개별 부서의 업무로 처리했다. 양평군은 탄약고 관련 업무를 행복도시과에서 하니 이전사업을 알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사실관계를 놓고 자칫하면 자치단체 간에 소송이 날 판이다.

우리 군이 군사시설사업을 이런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이전결정을 비공개로 하고, 후보지를 결정한 다음에 마지막에 해당 지역을 무마하는 방식 말이다. 특히 탄약고처럼 보통의 군사시설과는 달리 위험성이 크고, 군사시설보호구역이 2배로 설정되는 비선호군사시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번에도 탄약고에 드나드는 작업차량 때문에 주민이 알아챈 것처럼 요즈음 감출 수 있는 것은 없다.

국가와 군은 이 기회에 국방·군사시설의 재배치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정책으로 돌아서야 한다. 첫째로 비밀주의를 버려야 한다. 군사시설의 이전에 대한 계획을 해당 지역이 미리 알게 하여야 한다. 이번 횡성탄약고이전은 59탄약대대의 중대급 탄약고가 나갔다가 들어오는 것이라 했다. 터놓고 이야기 했으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둘째, 도시계획을 반영하여야 한다. 군사시설이 입지해 있거나 향후 입지할 곳의 도시계획과 상충되는지를 군과 해당 지역이 머리를 맞대고 지역주민의 희생이 적도록 해야 한다. 지평은 역사적 자존심에 비해 도시발전이 왜곡돼 있는데 이런 아픈 점을 헤아려야 한다는 말이다. 셋째, 국가는 탄약고와 같이 외부불경제가 큰 군사시설의 주변지역을 지원할 수 있는 비선호(특정)군사시설주변지원법을 만들고 지원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지역주민의 협력을 얻는 방법을 제도화해서 환영받는 군이 되도록 하는 것이 국가안보에도 중요하다.

/허훈 대진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