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다 빨리, 보다 친절하게 작품을 보여주는 시대에 정철 작가는 연필과 붓을 잡고 커다란 수채화 용지에 선고 색을 넣는다. 놀랍게도 100% 수작업으로 매주 작품을 완성하고, 이를 스캔받아 웹툰편집을 한다. 게다가 이야기의 호흡도 길어 아직도 2화가 연재 중이다.
<본초비담> 은 제목의 한자어는 근본 본(本) 풀 초(草) 숨길 비(秘) 이야기 담(談)이다. 뜻에서 유추할 수 있듯 <본초비담> 은 약초만화다. 정철 작가는 <본초비담> 의 발상이 감수를 맡은 신미경 원장(오디한의원)의 약초 노트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모든 약초에는 약초를 발견하게 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숨어있었던 것. 작가는 그 이야기를 뼈대로 오래 전 처음 약초를 발견했을 당시를 재현했다.

사냥꾼이던 아비를 따라 사냥을 익히던 설기찬과 용찬 형제. 용찬이 토끼를 향해 활을 당기려던 순간 백호가 나타난다. 아비는 형제를 살리고, 형제가 보는 앞에서 백호에게 물려 끌려 간다. 10년이 지난 뒤, 두 형제는 훌륭한 길잡이와 활잡이로 성장한다. 어느날 형제가 사는 동네에 호환이 발생하고, 현령의 딸이 호랑이를 만난 후유증으로 정신을 놓자 현령은 은자 50냥을 현상금으로 내건다. 때마침 급히 결혼 지참금을 마련해야 되는 사정이 생긴 형제는 호랑이 사냥에 나선다.
신화와 전설의 주인공은 인간이 흠모하는 위대한 이상인 지혜와 용기를 갖고 있다. 우리는 신화와 전설을 어른들에게 전해 들으며 자연스레 이를 마음에 담아둔다. <본초비담> 은 약초 이야기지만, 동시에 지혜와 용기를 지닌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형 설기찬은 짐승이 다니는 길을 잘 찾아내는 뛰어난 재능의 길잡이다. 동생 설용찬은 활을 들면 놓치는 법이 없는 활잡이다. 여러 정보를 종합해 짐승을 쫓는 길잡이 설기찬은 지혜를 상징한다. 백호와 마주해 단 한발의 화살로 상대하는 활잡이 설용찬은 용기를 상징한다. 지혜와 용기를 상징하는 주인공은 인간을 뛰어 넘는 야성을 상징하는 백호를 잡으려고 추격한다. 여기에 자리 욕심에 군대를 끌고 호랑이 사냥에 나서는 임헌 장군이나 퇴역한 호랑이 사냥꾼 장덕 어른이 나오지만, 갈등의 핵심 구조는 인간의 이상을 구현한 설씨 형제와 자연의 신비로운 힘을 구현한 백호의 대결로 압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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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의 영웅적 주인공들은 늘 지혜와 용기를 통해 인간이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적과 맞서 싸운다. 1화 ‘형제와 호랑이’에서 나오는 백호는 호랑이의 습성 조차 뛰어 넘는 산군이다. 이런 산군을 추격할 지혜, 그리고 그에 맞서 살을 당기는 용기는 설씨 형제에게 있다. <본초비담> 은 신화와 전설이 지녀야할 덕목인 지혜와 용기를 보여주는 동시 젊음과 늙음(설씨 형제와 은퇴한 장덕 어른), 인간적인 것과 자연의 것, 인간의 지혜와 야생의 힘 같은 이항대립의 주제가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하며 극을 끌고 간다.
<본초비담> 은 영웅이 사라진 이 시대에 진짜 영웅들의 이야기를, 영웅서사의 방식으로 재현한다. 게다가 그 이야기는 가장 원초적인 힘을 지닌 붓 끝에 실려 종이에서 마무리 된다. 한없이 가벼워지는 이 세상에 거친 호랑이의 숨소리처럼.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 본초비담> 본초비담> 본초비담> 본초비담> 본초비담> 본초비담>본초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