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모두 30여만명에 달하고 있다.
이 중 10%인 3만여명이 인천지역에서 일하고 있으나 그 가운데 절반이 넘
는 1만6천여명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인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이들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는 출입국관리법상 불법이란 이유로 '현
대판 노예' 취급을 받고 있다. 인권침해는 물론 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에
게 지급해야 할 각종 보상금까지 떼이는 사례가 허다한 실정. 그러다 보니
상당수가 돈을 받을 때까지 모국으로 돌아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불법 체
류자로 전락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는 피해 실태와 제도상 문제,
대책 등을 짚어본다.
 ▲잇따르는 인권침해 실태
 지난 99년 11월 산업기술연수생 비자를 통해 인천 남동공단 D업체에 취업
한 중국인 연수생 허모(31)씨는 작업중 상표를 붙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
사원에게 1차 폭행을 당했다. 허씨는 퇴근 무렵, 낮시간에 자신을 폭행했
던 검사원과 동료들에게 다시 야구방망이로 마구 얻어맞아야 했다.
 그는 지난해 7월에도 한국인 직장동료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이
유로 구타를 당해 코피가 터진 후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을 닦다가 다시 플
라스틱 상자로 머리를 수차례 얻어 맞아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허씨는 병
원 신세를 진 후 뇌진탕 판명을 받고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를 치료한 담당 의사는 “폭행당한 후 언어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포스
트 스트레스 증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허씨는 결국 아픈 상처만 안은 채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의 도움으로 최
근 중국으로 출국했다.
 인천 M철강에서 연수생으로 일했던 인도네시아인 N(27)씨는 2년치 적립금
을 한푼도 받지 못한 사례. 회사 연수생 담당자가 퇴사를 하면서 200만원
이 넘는 N씨의 적립금을 가로챈 것이다. N씨는 “통장 잔고를 확인해 보니
적립금은 온데 간데 없고 15만원의 일반예금만 남아 있었다”며 “연수생
이 되기 위해 수백만원을 썼는데 고국에서 어떻게 생활할지 걱정”이라고
발을 동동 굴렀다.
 ▲시급한 제도개선
 사법기관(법무부, 경찰청)은 지난 6월 말부터 7월 17일까지 특별단속을
벌여 2천여명의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검거했다.
 이에 대해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관계자들은 외국인노동자 불법 체류
가 왜 늘고 있나를 먼저 파악한 후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
한다. 우선 불법체류자 중 상당수가 임금체불과 산재보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모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방글라데시인 S(26)씨는 지난 99년 12월 한국에 들어와 월 55만원
의 임금을 받고 일을 한 후 악덕사업주에게 임금을 떼이는 바람에 그대로
눌러앉아 있다. 하지만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이 없는데다 정확한 의사표현
을 하지 못해 소액재판을 하더라도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고 한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신홍주 정책국장은 “외국인 노동자 문제 해결
을 위해 인권변호사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사례가 너무 많아 문제”라며
“외국인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을 신설하면 불법 체류자를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 운영에 관한 지침 21조 2항에는 '연수업체
가 계약 불이행이나 부당행위를 할 때 연수업체추천 및 배정제한 등 필요
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이익과 실리를 위해 조직된 단체에 인력도입과 문제해
결의 권한을 주는 것은 잘못됐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전문가들은 산업연
수생제도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선 국가간 협정을 통한 인력수급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허광 사무국장은 “중기협과 산업연수생 위탁 관
리업체간 비리근절을 위해선 노동부가 외국인노동자 문제를 전담해 처리해
야 한다”며 “전담기구를 설치하면 외국인 불법체류 및 범죄를 줄이는 효
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