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민 프레시안음식문화학교교장
권력에 밉보이면
고향도 바뀌는 세상
개인정보 유출 조심한다지만
관리소홀 대량 유출 심각
유명인·공인은 신상털기 예사
한심하고 치사하고 더럽다


30여년 전만 해도 개인정보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름과 주소가 기재된 두툼한 전화번호부가 굴러다녀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고, 명함에 버젓이 집 주소와 집 전화번호를 찍어 넣은 사람도 흔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 즈음은 금융실명제도가 실시되지 않을 때여서, 보통의 사람들은 건강보험, 운전면허증, 주민등록증 등의 발급 시 관공서에서 요구하는 서류, 학교에 입학할 때나 취직하여 직장에 내는 인사자료 정도에나 개인정보를 기술하면 되었고, 그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악용되거나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요즈음은 어디에서나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금융실명제 실시로, 금융 관련 일을 처리하자면 당연히 신분증을 제시하고 꼬박꼬박 개인정보를 기재해야 한다. 관공서는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기관이나 조직의 홈페이지에 의견을 올리려 해도 개인정보를 기재하고 회원 가입을 해야 한다. 휴대전화를 바꿀 때에도 매번 개인정보를 밝혀야 하고, 백화점에서 상품을 할부 구입하려 해도 영락없이 개인정보를 요구받는다.

그런데 개인정보는 그 제공된 곳에 가만히 모셔져 있지 않다. 폐기된 서류뭉치에 섞여 재활용 쓰레기장을 굴러다니기도 하고, 온라인 세상에 넘쳐 떠돌기도 한다. 이 정보들을 의도적으로 수집하여 상품의 홍보, 판매에 이용하는 것은 그래도 참을 만하지만, 보이스 피싱 등 범죄에라도 악용되면 개인적, 사회적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진해서, 또는 어쩔 수 없이 개인정보를 제공하면서도 그 정보가 유출될까 보아 노심초사한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개인정보는 이래저래 유출된다. 장삼이사들의 개인정보는 금융기관, 이동통신사 등의 관리 소홀로 대량 유출되어 합법 비합법적으로 이용당한다. 스캔들에 휘말린 유명 인사들의 개인정보는 누리꾼들의 집단 '신상 털기'로 까발려진다. 그리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건'에서 보듯이, 권력기관이 불법으로 확보한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나 '영혼 있는' 공무원의 개인정보는 '조폭언론'이 그 유통을 하청받아 여론의 시장에 뿌려댄다.

특정인의 '고향'을 밝히기 위한 '신상 털기'도 극성이다. '고향 털기'는 재벌 그룹의 비리를 폭로한 인사, 4대강 사업을 비판한 연구자, 정보기관의 불법행위에 대해 원칙을 갖고 대처한 공무원들에 집중된다. 삼성 재벌의 비자금 조성과 불법 로비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 국정원 직원의 댓글 의혹사건을 초동 수사했던 권은희 전 서초경찰서 수사과장,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려 했던 윤석열 검사 등이 그들이다.

왜 이들의 고향을 그렇게 알고 싶어 할까? 정확히 답하자면, 이들의 고향이 '전라도'인가를 확인하고 싶어서인 것이다. '전라도'임이 확인되면 공인으로서의 정의감이나 책임의식, 원칙 같은 것은 무시되고, 그들의 처신을 인사에서 TK 정권의 대척점에 있는 전라도 출신의 불평불만으로 폄훼하고자 하는 데 속셈이 있는 것이다.

일국의 국회의원이란 자가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밝혀내려 한 경찰공무원에게 '당신은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의 경찰이냐' 일갈하는 것도, 그리고 춘천 출신인 '나꼼수'의 김용민의 고향을 전북 부안으로 바꿔 인터넷을 도배하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 '윤석열 검사 고향'이라는 검색어가 제법 상위에 랭크되었었다. 그런데 아무리 집단 신상 털기를 해도 윤 검사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초중고, 대학교를 나왔으니, 전라도가 고향이 아니다. 그러자 다시 '윤석열 검사 아버지 고향'이란 검색어가 떴다. '당신은 서울이 고향이랄 수 있지만, 분명 당신 아버지 고향은 전라도일 거야!'라는 망상에서이다. 그런데 '윤석열 검사 아버지 고향'은 충청남도 공주시다! 이제 끝났을까? '공주는 옛 백제 땅이잖아? 그러니 공주도 전라도나 마찬가지'란다. 한심하고 치사하고 더럽고 지겹다.

/김학민 프레시안음식문화학교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