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
가족붕괴로 홀로 사는 노인 늘며
고독하게 살다 안타깝게 生 마감
노인들에 작은 일자리라도 제공
지역사회 공헌 기회 주고
더 중요한건 주위 구성원들이
자주 돌보는등 많은 관심 가져야


연말연시(年末年始)다. 등 따습고 배부른 사람들은 흥청(興淸) 좋아하다 망청(亡淸)되기 쉬운, 그러나 춥고 배고픈 사람들은 더욱 비참하고 서러워지는 희비(喜悲)가 갈리는 계절이다.

필자는 연극연출가이다. 사정이 없는 한 연말에는 따듯한 사랑을 전하는 감동적인 작품을 주로 공연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필자가 아프게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봉사라 생각하기에 그럴 것이다. 청춘을 다 바친 직장에서 젊은 사장에게 내쳐지고 오냐오냐 키우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빌빌대는 자식을 위해 보험금을 타게 해주려고 자동차를 타고 나가 고의사고를 내는 이 시대 최고의 비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말에 공연했고 우리나라 최고의 설화로 자리잡은 버려진 딸이 버린 아비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저승으로 목숨을 걸고 생명수를 구하러 가는 도저히 현실에서 특히 이 시대에 납득하기 힘든 효를 행하는 '바리공주' 이야기도 연말에 공연하였다. 비슷한 주제인 '효녀심청'을 각색하여 만든 '명랑소녀 심청'도 연말에 공연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연말에는 힘겨운 주변이 더욱 크게 보이는 탓일 것이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면 이것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은 미약하기 짝이 없어 자괴감이 든다. 너무도 힘겹고 현실이 고통이며 지옥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 힘겨운 주변에 더욱 힘겨워 보이는 분들이 21세기 가족의 붕괴와 더불어 증가하고 있는 홀몸노인 분들이다. 기존에 독거노인으로 명칭하고 이제 순화된 용어로 쓰이는 홀몸노인은 배우자나 가족과 함께 하지 않는 노인을 의미하거나 부양해 줄 가족이 없어서 혼자서 생활을 하는 노인을 말한다. 이 홀로 사는 분들이 우울하고 고독하게 살다가 방에서 홀로 삶을 마감하는 그리고 몇 주 심지어 몇 개월 후에 발견이 되는 비극이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데다 정부조차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홀몸노인은 약 125만명 정도이며 2035년에는 350만명 가까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특히 현재 125만명 중 30만명은 고독사 위험군이며 10만명은 관심이 필요한 가구라 한다. 고독사에 대한 정의가 아직은 정리되지 않고 있지만 대도시 서울서만 일 년에 오백명이 훨씬 넘는 홀몸노인들이 혼자 죽음을 맞이한다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런 홀몸노인들이 계속 증가할 것이고 대부분이 경제적 능력이 없는 빈곤층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홀몸노인이 가족이 있지만 그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고려장이 벌어지고 있다 해도 과한 말이 아닐 것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나름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독거노인 돌봄 서비스' '안전 돌보미' '사랑 잇기' 등의 사업과 특히 경기도는 지난해부터 지역 홀몸노인을 주민들이 스스로 돌보는 형태의 '홀몸노인 돌봄 사업'을 시작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예산과 인력문제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최근에 안전행정부와 우정사업본부에서는 부산 도심에서 독거노인이 숨진 지 5년 만에 발견된 것을 계기로 고독사 예방을 위한 독거노인 돌봄 관련 정책들을 재점검하고 우편집배원을 통해 불편한 독거노인의 불편사항을 접수하는 새로운 민원서비스인 '행복배달 빨간 자전거 사업'을 도입한 것은 그래도 신선한 아이디어로 보인다. 또한 작은 일자리라도 노인들에게 일하도록 하여 지역에 공헌하게 한다고 한다. 문제 해결의 가장 좋은 방법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이다. 누구도 예외 없이 늙고 죽는다. 누구라도 고독사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가족이 붕괴되고 효가 사라지고 인정이 식어버린 암울한 이 시대 다시 가져와야 한다. 바리공주가 자길 버렸던 아비를 위해 목숨을 건 것처럼 심청이가 아비를 위해 인당수에 빠진 것처럼 가족을 효를 정을 그리고 사랑을 이것이 안 되면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장용휘 연출가·수원여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