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다녀온 두 전직대통령, 가족생사 확인 안해줘
실향민 1세대 위로조차 못받고 지금도 세상떠나
평생을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두 눈이 짓물렀던 백부께서 지난달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사실 갑작스러운 것도 아니다. 약간의 감기 기운이 있었고, 두 달 전 폐렴진단을 받아 병원치료중이었으며, 무엇보다 백부의 연세는 87세였다. 100세시대라는데 87세에 명을 달리 하신게 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죽음은 늘 슬픈 법이다. 백부는 3년 전 기독교에 귀의했다. 젊은 시절 그때 지식인들이 그랬듯 마르크스에 심취하기도 했을 정도로 지적 욕구에 충만하던 분이었다. 교회에 그저 건성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은 분명할 터, 마치 종교연구가처럼 성서를 탐독했고 '성서읽기'를 신앙의 의미로나 학문의 의미로나 꽤 충실하게 독파했다. 하지만 나는 백부가 백발이 성성한 늦은 나이에 교회를 찾아가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문을 외우고 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다.
백부는 임종시 "나 천국으로 먼저 갈래"라고 말했다고 현장에 있었던 목사가 말했다. 백부에게 문병을 왔다가 졸지에 임종을 지켜보게 된 목사는 절박한 순간에 그런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튼실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홍조띤 얼굴로 "기적이… 기적이…"라며 말했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서 임종을 지켜본 사촌매형의 의견은 달랐다. 백부께서 '나 고향으로 돌아갈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귀향'에 병적이리만큼 집착했던 백부의 마음을 잘 알고있는 나는 어쩌면 사촌매형의 말이 맞을 줄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긴 천국이면 어떻고 고향이면 어떻단 말인가. 백부의 고향은 영변이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의 한 귀절 '영변의 약산 진달래 꽃'의 그 영변, 아니다. 남한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핵시설로 더 유명한 그 곳. 정확히 말해 평안북도 영변군 남송면 천수동 107.
백부는 서울에 가고 싶었다. 1주일만이라도 도대체 남한의 분위기가 어떤지 체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풍문만이 호기심을 채워주지 못했고, 당신이 직접 별천지라는 서울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렵게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떠나는 날, 아홉 살 막내 동생이 같이 가겠다며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의 손을 꼭 잡고 집을 떠나는데 동생은 동네 어귀에서 갑자기 형의 손을 뿌리치며 "형만 갔다 와! 나 안 갈래, 난 엄마랑 있을거야!"라며 뒤도 안보고 집 앞에서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는 어머니한테 뛰어갔다는 것이다. 고향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게 꼭 65년 전 일이었다. 등을 보이며 뛰어가던 동생의 모습이 평생 가슴에 사무쳤다고 백부는 늘 말하곤 했다. 그때 그 막내의 손을 꽉 잡고 있었더라면 하면서 못내 아쉬워했다. 그말을 할 때마다 바로 아래 동생, 즉 나의 아버지는 언제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2000년 8월 15일. 평양시민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순안공항에 도착하던 날, 백부는 무척 흥분된 모습이었다. "이제 고향에 갈 날이 며칠 안 남았다. 고향에 못가도 식구들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생사는 확인해 주겠지"라고 백부는 굳게 믿었다. 남한의 대통령을 평양까지 불러들이는 '햇볕정책'의 위력이 저럴진대, 생사 확인 정도야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감감무소식이었다. 서신 교환까지 바란건 언감생심이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 그후 노무현 등 좌파정권 10년동안 누구도 백부에게, 이 땅의 실향민 1세대들에게 '당신들이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해 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국가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점 사과한다'라고 말하며 위로해 준 대통령은 없었다.
백부께서 천국에 갔는지 고향으로 갔는지 나는 모른다. 장장 65년의 길고 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3년의 절절한 신앙생활에서 터득한 천국의 존재 중 어느 것이 가슴속에 더 사무칠지도 헤아리기 어렵다. 분명한 건 백부가 이제 우리 곁에 없다는 것. 현재 생존해 있는 실향민 1세대들은 5만명 남짓이라고 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고향을 그리워하며 생을 마감하는 실향민도 있을 것이다. 이번 장성택 사태로 실향민들의 마음이 얼마나 요동을 치고 있을지 불을 보듯 뻔하다. '통일은 벼락같이 올 것'이라는 백부의 말처럼 북한 사태가 통일의 물꼬를 터줄지 지금 실향민들의 손은 떨리고 있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