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밴드활동 하기도
'생활고' 동료들 떠나가
"힘든 농성 알아줬으면…"
2천500일이 넘게 농성을 이어온 해직 노동자들이 연극 무대의 주인공이 됐다.
자신들의 해고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기나긴 세월동안 우여곡절을 겪은 기타 제조·유통업체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새로운 도전을 했다.
지난 17일 오후 4시 서울 대학로 '혜화동 1번지' 소극장. 이인근(47·금속노조 콜텍지회장)씨, 김경봉(56)씨, 장석천(43)씨, 임재춘(50)씨 등 콜트·콜텍 해직 노동자 4명은 이날부터 22일까지 상연하는 연극 '구일만 햄릿'의 리허설에 열중하고 있었다.
주인공 '햄릿'역을 맡은 장석천씨는 애증어린 목소리로 명대사인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읊조리고 있었다. 여주인공인 '오필리어' 역을 맡게 된 임재춘씨의 진지한 여성 연기에 중간중간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이들이 무대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밴드(콜밴)'를 결성해 서울과 인천 등지에서 밴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였으나, 정작 이들은 전혀 악기를 다룰 줄 몰랐다고 한다.
이인근씨는 "기타를 만든다는 사람이 정작 기타 칠 줄 모른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고, 한탄스럽기도 했다"며 "해직 이후 뮤지션들의 도움을 받아 악기를 배웠다. 무척 즐거웠다"고 말했다.
전 세계 기타의 약 30%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주)콜트악기와 (주)콜텍은 2007년 말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인천공장과 대전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이때부터 이듬해 8월까지 160명의 콜트콜텍 노조 조합원 모두가 정리해고당했다.
해고 이후 연극무대에 서기까지 7년여간 해직 노동자들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송전탑에 올라 고공 단식농성을 벌이고, 독일·미국·일본 등 해외 곳곳을 떠돌며 해고의 부당함을 알렸으며, 인천 부평구의 콜트악기 공장 점거농성을 하다가 공장건물 철거로 내쫓기기도 했다. 철거된 인천공장 맞은편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는 동안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노동자들은 다른 직장을 구해 농성장을 떠나갔다.
남은 조합원 45명은 일용직 건설노동, 대리운전, 식당일 등을 통해 근근이 생계를 꾸리면서 농성과 소송진행 등 실질적인 노조활동을 하는 동료들을 돕고 있다.
이처럼 장기간 벌여온 투쟁에도 불구하고 연극무대에 나선 해직 노동자들의 표정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임재춘씨는 "노동만 하던 사람들이라 몸도 뻣뻣하고, 감정 연기가 어색하기만 했다"며 "하지만 연극을 통해서 우리가 누구인지,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는지 알아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7시30분, 공연이 시작되자 55석의 객석이 관객들로 가득 찼다. 하지만 해직 노동자들의 가족이나 동료는 찾기 힘들었다.
김경봉씨는 "아내는 예전같이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들과 함께 놀러도 다니는 평범한 삶을 원하고 있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니 굳이 말리지 않겠다고 한다"며 "가족과 동료들은 생계를 꾸리느라 바빠 공연장에 오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장석천씨는 "햄릿은 아버지의 원수이자 어머니를 빼앗아 간 삼촌에게 복수하지만, 결국 자신도 죽고 마는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며 "회사에 삶을 빼앗긴 콜트콜텍 노동자는 햄릿과 비슷한 처지인 것 같다. 하지만 결말은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