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거두기 전까지 매달린 유작
연쇄 살인마·미지의 작가 소재
범죄로 연결된 어둠·공포 묘사
'악'의 태동·진화과정 파헤쳐

■ 2666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송병선 옮김. 열린책들 펴냄. 1권(308쪽)·2권(136쪽)·3권(232쪽)·4권(548쪽)·5권(528쪽). 세트 6만6천600원.


각지에서 모인 문학 연구가들과 비평가들이 수수께끼의 독일 작가 '베노 폰 아르킴볼디'에 관한 탁상공론을 벌인다. 이들은 멕시코 국경도시인 산타 테레사에 가면 아르킴볼디를 찾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길을 나선다.

한편, 아르킴볼디의 책을 번역한 칠레의 교수 아말피타노는 딸 로사와 함께 산타 테레사에 정착한다. 그런데 자꾸만 이상한 꿈에 시달린다.

이 지역에서는 연일 무수한 여성이 처참하게 죽어나가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경찰과 탐정들이 몰려들지만 사건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교회 곳곳에서는 미지의 인물이 똥오줌을 갈긴다. 경찰은 경호원으로 일하던 랄로 쿠라라라는 청년을 영입한다.
한스 라이터라는 키 큰 금발 소년은 뒤늦게 등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그는 어느 날 유대인 작가 보리스 안스키의 일기를 계기로 작가가 되기로 한다. 그의 필명은 '베노 폰 아르킴볼디'다.

소설 '2666'에서 사건의 집결지가 되는 산타 테레사는 멕시코의 실제 도시 후아레스를 모델로 했다. 후아레스는 오늘날까지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 있는 여성 연쇄 살인사건이 자행된 곳이다. 저자는 산타 테레사를 통해 범죄로 점철된 세상의 그늘과 공포를 그려낸다.

또한 '연쇄 살인마'와 '유령 작가'라는 두 가지 축을 통해 전쟁, 독재, 대학살로 점철된 20세기에 인간의 악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파헤친다.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 등장한 최고의 작가라는 찬사를 받는 로베르토 볼라뇨(1953~2003)의 이 작품은 발표 직후 스페인과 칠레의 문학상을 휩쓸었고, 미국에서도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첫 장편 '아이스링크'(1993)를 시작으로 거의 매년 소설을 펴낸 볼라뇨는 스페인의 블라네스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5년 동안 2666의 집필에 매달렸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이 작품을 5부 소설에 걸맞게 다섯 권으로 나눠 1년 간격으로 출판해 달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하지만 유언 집행인은 볼라뇨의 유언을 뒤집고 '2666'을 한 권에 모든 분량을 담아 출판했다.
이번 한국어 번역판은 5권으로 나눠 출간됐다.

/민정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