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저점에 이르지만
새로운 태양과 함께
새생명의 도래를 의미함으로써
동서를 막론하고 철학·종교적
비중을 가질수 밖에 없다
동짓날을 지내자마자 바로 크리스마스이다. 동지는 농경사회에서 중시되던 24절기의 하나이기 때문에 보통 음력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양력으로 태양의 주기를 계산해서 얻은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다. 크리스마스도 예수의 탄생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로마제국의 동지축제의 변형으로서,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 무렵을 택해서 부활의 의미로서 이 날을 기념일로 정했다고 한다.
새해 첫날과는 열흘 차이가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동짓날이 한 해의 마지막이다. 그 이유는 한 해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끝점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풍속으로 동지는 작은설(亞歲)이라고 부르면서 이날 팥죽을 쑤어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한 것이나, 조선시대 관상감에서 동짓날에 다음 해의 역서를 만들어 궁중에 바치고 관아에서 동지 선물로 책력을 선사하던 풍습이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날이 그날 같고 또 그날이 그날 같기만 했을 일상의 나날속에서 정확한 1년의 주기를 파악하고, 동지란 극점까지 알아낸 것은 대단한 발견이며 인류 지성의 쾌거라고 아니할 수 없다.
아무튼 이 날까지로 모든 생명활동은 극저점(極低點)에 이르지만, 새로운 생명이 꿈틀거리며 부활하는 희망의 날로 전환된다. 그렇게 동지는 새로운 태양과 함께 새 생명의 도래를 의미함으로써, 동과 서를 막론하고 철학적 종교적 비중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집트의 피라미드에도 페루의 마추피추에도 영국의 스톤헨지에도 동짓날 새 태양이 떠올라 비친 각도와 그림자를 기준으로 배열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필자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동짓날 아침 피라미드나 마추피추에 가서 그 고대의 신비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
동지는 생명이 부활하는 성스러운 시간이자 우주질서의 중심축(axis mundi)이다. 그래서 전통시기 중국에서는 동짓날이 되면 천자가 남쪽의 교외에 둥그런 제단(圓丘)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최대의 국가제사를 거행했다. 이 제사는 새로운 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천지의 '재생(rebirth)'을 경축하는 의례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동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띠는 것은 해가 길어진다는 점에 있다. 현대에서는 날이 따뜻해진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저 자연에 의존해 살아야 했던 고대시기에 있어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해가 길어지면 비록 지금은 추워도 이제 머지않아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해질 것이며, 이제 모든 생명있는 것들은 죽음의 두려움에서부터 벗어나 다시 생명이 부활(復活)하리라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아직은 한겨울이지만 해가 길어진다는 사실 자체는 추운 겨울을 나는 원시인들에겐 푸른 봄의 서광이자 생명의 약속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니 동지를 쇠고 나서 첫 태양이 뜬 아침에는 아마도 서로들 낮의 길이가 길어짐을 축하하고 새로운 생명의 다짐을 하던 날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동지는 오랜 옛날부터 태양의 축제날이 되었다.
공교로운 것은 오늘날 동지 무렵에서 크리스마스타이드는 젊은 청소년들의 축제 기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먼저 세계 최대의 종교 기독교의 가장 큰 축제인 크리스마스와 겹치는 데다가, 흰 눈이 천지를 뒤덮는 계절이자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시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날은 아마 1년중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흥청이는 날이 되었다.
고대 인류의 삶의 경험과 지혜를 담은 고전 주역에서는 복괘(復卦)가 바로 이 동지점을 상징한다고 한다. 맨 아래에 있는 양효 하나가 하나씩 자라나오면서 부활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복괘에서는 우리에게 나라의 관문을 닫고 모든 인위적인 움직임을 멈추고 고요히 천도의 변화를 따라 새로운 기운이 자라나오도록 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이렇게 한 해가 또 저문다. 저 창밖에는 네온사인이 찬란하고 캐럴이 한창이다. 대체 나는 지난 1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보냈던 것일까? 이제 창문을 닫고 내면의 소리에 한번 귀를 기울여보아야겠다.
/임채우 수필가·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