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견제하라고 만든
국회가 제몫을 다해주길 바란다
서로 자기편들을 거리로 끌어내
투쟁상태로 몰고 가는
이런 정치를 원하는건 아니다
새해가 코앞인데.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을 넘기기가 겁난다. 한해 내내, 온기가 넘쳐야 할 거리가 권력을 뺏고 뺏기지 않으려는 투쟁의 장으로 변했다. 급기야는 철도를 운행해야 할 기관사들마저 거리에 서더니, 쟁투의 깃발과 목소리가 서울 도심 곳곳의 세밑 거리를 채웠다.
새해를 희망차게 마주하고 싶은 거야 누구나 가지는 소망이다. 하지만 이대로 한해를 보내면 그렇게 될까? 더 지겨운 갈등과 더 역겨운 권력투쟁이 거리를 메우지 않을까 두렵다. 처음에는 댓글사건이 도화선에 불을 댕겼다. 머리 허연 야당 당수가 여름철에 국회를 박차고 나와 찬바람이 불 때까지 거리를 지켰다. 한 종교단체의 따뜻한 구호와 이름 모를 선행들로 넘쳐나나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당이 거리로 나섰다. 망발을 한 두 야당의원을 규탄한다는 게 이유였다.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있다. 모택동이 한 말이다. 이것을 이젠 '권력은 거리에 있다'고 바꾸어야 할까보다. 거리는 사람들이 사는 실재적 공간이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에겐 국민이요, 모택동에겐 인민이다. 국민당 정부와 전쟁을 벌이던 장정의 시기 그가 기댈 곳은 당시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농민들 밖에 없었다. 그는 농촌에 혁명근거지를 만들고, 농민들로 수혈한 혁명군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모는 군대에 3대 규율과 8대 행동수칙을 제정해 농민들을 수탈할 수 없도록 하여 농민들의 마음을 샀다. 예를 들어 행동수칙 1조는 "자려고 인가에서 빌려온 문짝은 제자리에 걸어놓아야 한다" 이다. 권력자들의 오랜 수탈을 지겨워하던 농민들을 권력투쟁의 교두보로 삼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중국을 공산화했다. 그런 그의 말로도 행복하지 않았다. 정상국가를 버리고 홍위병에게 거리를 내맡기는 실수에서 비롯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민주주의는 영불의 절대왕권과의 투쟁에서 시작된다. 혁명의 시기에 대중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이라 할 정도로 정치사상도 많았고 권력을 쥐고 싶은 세력도 많았다. 끝없는 거리에서의 투쟁과 실험 끝에 겨우 민주주의가 태어났다. 선거라는 제도로 가장 많은 사람을 대표하는 세력이 권력을 가져가게 하여 정부를 구성하게 하였다. 정치의 제도화요, 권력투쟁을 제도화시킨 기막힌 발명품이다. 이제 거리의 국민들은 누가 미래를 이끌어갈 말을 하는지 지켜보고 뽑아준다. 그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늘 권력투쟁에 휘말려 살지 않는 정치제도를 만든 것이다.
한국사회 역시 이 민주주의를 값비싼 거리의 경험을 치르면서 만들어냈다. 36년의 식민지의 설움과 해방, 그로 인한 분단과 전쟁, 초기정부의 무능과 독재, 이에 대한 반발로서의 1960년의 4·19혁명, 그리고 이에 대응한 5·16쿠데타와 오랜 군부집권의 시기를 거쳐, 잠시 맞은 서울의 봄과 5·18 광주사태, 1987년의 6·10항쟁을 통해 비로소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마음에 국민들은 목숨을 걸고 거리에서 항거했다. 그리고 더 이상 거리로 나올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선거로 뽑아준 정치인들이 거꾸로 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제 각각 자신들을 찍어준 국민들을 선동한다. 거리로 나오라고. 그래서 상대방을 쳐부수자고. 이런 꼴이다.
정치기제가 잘 작동되면 거리의 정치는 보기 어려워야 한다. 국민들로서는 힘들여 구성해 준 정부가 잘 작동하고, 이를 견제하라고 만든 국회가 제 값을 다하길 바란다. 서로 제 편들을 거리로 끌어내어 투쟁 상태로 몰고 가는 이런 정치를 원한 게 아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및 교역 규모를 갖고 있는 우리 사회는 이제 단선적이지 않다.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들의 수도 많고, 이해관계와 가치들이 매우 다양하다. 때문에 갈등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잘 해결하면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높은 발전으로 이끌 수 있다. 이해관계와 가치가 다른 사회 집단들이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대표되어 어렵게 만든 민주주의 틀 안에서 타협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정치이다. 새해에는 정상적인 정치를 보고 싶다. 국민들을 거리로 불러내지 말라.
/허훈 대진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