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지은죄와
나에게 아픔 줬던 사람들도
용서했습니다, 새해엔 그동안
맺혔던 마음 내려놓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얼마 전에 '연합뉴스TV Y'의 5부작 다큐멘터리 <명사와 함께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멘토로 초청돼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습니다. 멘티는 공모를 통해서 선발된 사람들입니다. 멘티, 방송촬영팀 등 11명이 배낭을 메고 30일 동안 800㎞를 걸으면서 대화와 강의를 통해 멘티를 힐링시키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국경이 끝나고 스페인 국경이 시작되는 지점인 론세스바예스에서부터 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던 스페인 땅끝,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있는 산티아고 성당까지 이어지는 800㎞의 길입니다. 이 길은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한 길로 야고보가 참수당한 뒤 그 유해를 실은 배가 도착해 묻힌 산티아고를 향해 걸어가는 길입니다. 야고보를 에스파냐어로 산티아고라고 합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의 거리입니다.
1천년 전부터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길의 풍경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나이가 얼마나 됐는지 알 수 없는 아름드리 나무가 빽빽한 숲, 코발트 빛 하늘, 만들어 놓은 그림 같은 뭉게구름,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일출과 일몰,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과 밀밭, 아무리 다가가도 더 멀어지는 지평선을 쫓아 하루에 25~35㎞씩, 6~9시간을 산티아고를 향해 끝없이 걷는 길입니다. 중간에 이 길을 걷다가 죽은 사람들을 묻은 '순례자의 무덤'도 많이 있습니다.
이 길을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는 얻으려고, 누구는 버리려고, 누구는 찾으려고, 누구는 잊으려고, 누구는 보려고, 누구는 보지 않으려고 이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과연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걷게 됩니다. 마지막 목적지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하면 순례자들은 광장에서 서로 부둥켜안거나 광장 바닥에 누워서 뜨거운 울음을 터뜨립니다. 자신이 순례길을 완주해냈다는 것을 느끼는 감동의 순간입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그야말로 수만가지 생각이 많았지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배낭도 마음도 내려놓으면 가볍습니다. 무거우면 멀리 가지 못합니다. 그러니 힘들지 않으려거든 배낭의 짐도, 마음의 짐도 내려놓는 게 좋습니다. 미워하는 마음도 내려 놓으면 가볍습니다. 그동안 사무친 원한도 용서하면 가볍습니다. 용서는 결국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둘째, 멈추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꼭 빠르게 갈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니 고통스럽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걸으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걸으면서 산이 높다고 주눅들 필요도 없습니다. 한발 한발 걷다 보면 언젠가는 산을 넘게 됩니다. 산을 넘었다고 우쭐댈 필요도 없습니다. 더 큰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러니 멈추지 않고 한발 한발 걸으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셋째, 감사할 일이 많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누리고 살고 있던 한국에서의 모든 일들이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한번은 제작진이 깜짝 쇼로 매운 떡볶이 파티를 열었는데, 출연진은 완전 감동했습니다. 한국에서의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들, 마른 옷, 편안한 침대와 이불, 김치찌개, 매운 닭발… 모두가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항상 옆에 있으니 그 고마움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걸으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그들을 위해 걸으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제 용서를 빌었습니다. 살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에 대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물론 제게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도 용서했습니다. 오늘은 새해의 첫날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얻은 지혜처럼 새해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맺혔던 마음을 내려놓고, 뚜벅 뚜벅 한발씩 걸으면서, 현재의 제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여러분의 행복한 새해를 위해 기도합니다.
/송진구 인천재능대 교수명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