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생태복원' 소설가 故박경리 선생 제시
기존 공간에 대한 관심과 창의적 표현력 강해
지난해 가을 감동적 뉴스 중의 하나는 노르웨이 리우칸 마을 이야기였다. 화제의 마을은 주민 3천명가량의 작은 도시로 산간 협곡에 위치해 있어서, 해마다 9월과 3월 사이에는 해발 1천883m의 산그늘에 가려 어둠의 마을이 된다. 마을 주민은 가을부터 겨울까지 햇볕을 쬐기 위해 곤돌라를 타고 산 중턱까지 올라가야 했다. 햇볕을 쬐지 않으면 비타민 부족으로 구루병에 걸리고 우울증도 심해지기 때문이다. 2005년에 이 마을로 이사온 마르틴 안드레센이라는 설치예술가는 햇볕을 쬐러 산으로 올라가야만 하는 주민들을 보면서 산중턱에 거울을 설치하여 마을을 비추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처음 마을 사람들은 실현 가능성도 믿기지 않는데다 큰 예산이 투입되는 것도 탐탁지않게 여겨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차츰 안드레센의 아이디어에 대한 예술가들과 주민들의 지지가 늘어나면서 마침내 인공태양거울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한 기획단이 꾸려졌다. 리우칸 시장도 태양거울 프로젝트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약 9억원에 달하는 모금이 이뤄져 결국 실험은 성공하였고, 리우칸 마을은 어둠에서 해방되었다. 리우칸 마을의 인공태양거울 이야기가 노르웨이 국내는 물론 외국에까지 알려지면서 이를 보러 방문하는 국내외 관광객이 늘고 있다. 어둠의 마을이 일약 관광명소로 바뀌어 거울이 주민 소득에도 보탬이 되는 일석이조가 된 것이다.
리우칸 마을의 인공태양거울프로젝트는 한 예술가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였지만 자신의 이웃과 삶터에 대한 배려와 고민의 결과이다. 이처럼 문화예술인의 상상력이 도시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 상당수의 예술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과 장소를 관조하고 투시하면서 작업하기 때문에 도시 공학자만큼이나 자신의 삶터를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인들이 도시와 마을 공간을 둘러볼 여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의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하고 시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돌아가신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만년에 생명사상을 실천하는 일에 앞장선 박경리 선생은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시민모임을 오래 이끌었는데, 을씨년스런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대신 청계천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안을 제시했다. 박경리 선생이 꿈꾸었던 청계천은 시냇물을 복원하여 수달과 너구리가 살 수 있고, 천변에는 상추를 심고, 한국적인 주택을 세워 우리문화, 생명 존중의 자연주의적 공간을 수도 한복판에 만드는 것이었다.
최근 욕망의 정글로만 여겨온 도시에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마을 만들기' 사업이 그것이다. 그동안 투자의 수단으로 여기던 주택과 투기의 눈으로만 바라보던 구도심 지역을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만들어 보려는 시도들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침체된 부동산 경기 때문에 중단된 재개발 사업의 대안으로 선택한 고육지책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몇몇 지역에서 마을의 문제를 지역운동가들과 주민들이 스스로 해결하는 공동체를 회복해가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으며 기존의 공간을 창의적으로 해석하여 새롭게 표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 예술가들의 활동은 그 자체로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되며, 이들의 자유로운 표현과 행동도 주민들의 관습화된 일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예술인과 마을의 관계가 늘 조화로운 것은 아니다. 예술인들의 활동이 주민들과 갈등을 빚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홍대 앞을 문화의 거리로 만든 예술가들처럼, 예술인들의 활동으로 쇠락한 도심이 활성화되게 되면 높아진 작업실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나는 역설적 상황도 발생한다. 이런 역설을 알면서도 구도심의 미로 같은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는 '마을 예술가'들이 있다. 새해에는 마을 예술가들처럼, 리우칸 마을을 밝힌 안드레센처럼, 시민들도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와 마을을 찬찬히 되돌아 봤으면 좋겠다.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