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낮추며 섬김 나눠야
인천, 차의도시로 알리기
무형문화재 권익향상 앞장
'茶人' 이규보 업적 선양도
선생은 1929년 군산에서 태어나 조부인 이상제 공 밑에서 차문화와 예절을 익혔다. 항상 주변 사람들을 보살피고 나눔의 철학을 가지고 있던 조부모로부터 하심(下心)의 정신을 배웠다.
1970년대 차문화의 부흥을 외치던 선각자들의 대열에 항상 이귀례 선생이 있었다. 선생은 다신계, 한국차인회 등의 결성을 주도하였고, 이어 오늘날 한국 최대 차문화 단체인 한국차문화협회를 설립한다.
선생은 조선시대 차문화의 정신이 손님을 대접하고자 하는 배려의 정신에서 출발하고 있음에 주목하였고, 이에 조선시대 규방의 차문화를 복원하여 정립하였다. 이것이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1호 규방다례이다.
규방다례는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여성들이 거처하는 곳, 즉 규방에서 행하는 행다법을 일컫는다. 손님이 방문할 것이라는 연통을 받게 되면 주인은 몸소 대문 밖에 나아가 맞이하여 규방으로 안내한다. 이 때 큰절로써 서로 인사를 나눈 뒤에 다실로 안내하여 차를 대접하게 된다.
규방다례의 행다법은 손님을 배려하는 정신을 바탕으로 여인들의 아름다운 맵시와 절제된 행동을 보여주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찻잔을 비롯하여 어느 다구를 들 때에도 두 손으로 공손히 하며, 모든 행위가 여인의 품을 벗어나지 않으니 품격있는 아름다움이 행다 내내 이어진다.
차를 미리 맛보아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 또한 손님들에게 맛좋은 차를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요, 항상 연장자로부터 차와 다식을 드리는 순서를 잡으니 여기에도 우리의 예절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여성들의 교육서인 '여사서(女四書)'에는 차는 술과 함께 상비해야할 음료였으며, 어른을 섬길 때에 차 올리는 것이 매우 중요시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여성들에게 '봉제사 접빈객(奉祭祀接賓客)'은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이었다.
제사를 모시고 손님을 대접할 때에 차가 필요하였기에, 규방다례는 여성들이 몸에 익혀야만 할 문화였던 것이다. 이귀례 선생은 시대는 변하였으나 규방다례는 오늘날에도 반드시 필요한 차예절이라고 역설한다.
"차예절을 익힌 어린아이들은 함부로 뛰어다니지 않습니다. 어른을 공손하게 대할줄 알게 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위기의 학교라고 걱정을 합니다. 학교에서 따돌림과 폭력이 난무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규방다례를 배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신념은 전국청소년차문화전과 전국인설차문화전의 개최로 이어진다. 이 두 대회를 통해 매년 1천명이 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미래의 차인으로 육성되고 있다.
선생은 인천을 차의 도시로 알리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다. 5년 전부터 전국 차인의 날 기념식을 인천에서 개최하면서 매년 5천여명의 차인들이 인천을 방문하고 있다. 지역을 사랑하는 이귀례 선생의 정신을 살필 수 있는 대목이다.
선생은 "사람들이 인천에는 문화가 없다고 말할 때마다 참으로 답답합니다. 인천은 너무 개항의 역사에만 매달려 있어요"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인천에는 이규보라고 하는 고려시대의 대문장가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는 훌륭한 차인이기도 했어요. 그가 남긴 차시(茶詩)가 50여 편이 넘습니다"라고 말한다.
백운 이규보는 계양도호부사로 인천에 인연을 맺었고, 말년의 관직을 강화에서 지내면서, 길상면에 묘를 두고 있음을 염두에 둔 말이다.
뜻을 두면 항상 행동으로 옮기는 선생은 지난 해 10월에 '백운 이규보 학술강연회 및 헌다제'를 개최했다.
당시 학술강연회에는 250명의 청중이 모여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고, 강연회 이튿날에는 백운 선생의 묘에서 100여명의 시민과 차인이 모여 헌다제를 올림으로써 차인 이규보의 위대한 업적을 선양하는 작업을 본격화했다.
이귀례 선생은 지인들에게 "항상 공부해야 해, 요즈음 젊은이들이 IT, BT하면서 첨단기술을 이야기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이 얘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어. 자식들에게 우리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 수 있어야 해. 그래야 자식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거야"라고 말한다.
선생은 6년째 재인천광역시무형문화재총연합회 이사장직을 수행하면서 무형문화재의 권익 향상에도 열의를 다하고 있다.
항상 그들에게 "여러분들은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인천 인구 300만명 가운데 박사가 1만명이 넘습니다. 그러나 무형문화재는 40여명에 불과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생계가 여의치 않은 가운데에도 전통문화를 전승하느라 힘겨워하는 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기 위한 선생만의 화법인 것이다.
글/심효섭(가천박물관 학예실장, 인천광역시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