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 '골목, 살아지다' 출간
행정서적아닌 답사기 화제
한센병 환자 거주한 십정동
재개발·연탄공장 이야기등
인천 근·현대사 '고스란히'
인천시가 낸 '골목, 살아(사라)지다'라는 제목의 책은 그동안 행정기관에서 펴내 온 지역 관련 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어려운 행정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비비대기치며 살아온 삶의 흔적을 생동감 있게 살려낸 답사기이기 때문이다. ┃사진
첫 장은 동구 송현동으로 시작한다. 수도국산이 핵심 공간이다. '송현동 사람들은 난민(亂民) 아니면 빈민(貧民) 사이의 구차한 삶을 이어갔다'는 작가의 말은 송현동과 수도국산을 한마디로 응축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이던 1910년 서울 노량진에서 끌어온 물을 저장하는 배수지를 만들고, 이 배수지를 관할하는 수도국이 생기면서 수도국산이란 이름을 얻었다는 것과 그 뒤로 100년 가까이 민간인 통제구역이었다는 점, 우리나라 대표적 달동네가 이 수도국산 언저리에 들어서게 된 사연, 재개발 사업으로 아파트촌으로 변한 모습, 6·25 때 수용소촌과 연탄공장 이야기,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방문과 인천 첫 대규모 재개발에 얽힌 뒷얘기가 인천의 도시사를 말해준다.
냉면골목으로 유명한 동구 화평동 골목으로 책장이 넘어가면 이 동네의 생성·변천사뿐만 아니라 국내 희곡사의 중요 페이지를 연 함세덕과 만나게 된다.
극작가 함세덕이 화평동 태생인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미술 평론계의 1세대로 꼽히는 석남 이경성 선생과 한글 점자를 창안한 송암 박두성 선생의 인생도 엿볼 수 있게 한다. 인천의 극장사의 한 장면도 화평동 골목에서 만날 수 있다.
중구 내동 골목에서는 인천 근현대사의 고갱이가 숨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백범 김구 선생이 감옥살이를 하고, 항만 축조 공사에 동원돼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현장을 만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성공회 교회인 내동교회, 한국 최초의 도선사(導船士)였던 유항렬의 저택, 우리나라 이민사의 첫 장을 연 내리교회도 찾게 된다. 또한 오페라 '나비부인'의 실제 주인공의 딸이 이 동네에서 살았다는 얘기를 접하면 만만찮은 근대 인천의 내공을 실감하게 한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촬영지 부평구 십정동. 한센병 환자들의 집단 거주지가 있었고, 인근 수출 5·6공단이 활기를 띨 때는 여기도 신흥 상권이 활발했다. 지금은 인천의 대표적 낙후지역이다. 십정동은 또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전 시험지이기도 했다.
'골목, 살아(사라)지다'에는 이렇듯 인천의 근현대를 살아간 인천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공간이 풍성하게 담겼다. 지금은 생경한 것들이 오래된 '골목'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 책은 '골목'으로 보는 인천의 근현대사라고 할 수 있다.
/정진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