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현 인천본사 사회부 차장
지난주 해가 바뀐다고 해서 무척 오랜만에 인파 속에 파묻혔다. 교통지옥을 피하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인천 정서진 해넘이 축제장을 찾았다. 본 행사격인 일몰 시각이 훨씬 지난 뒤 도착했지만, 도로를 빈틈없이 채운 차량의 홍수부터 맞닥뜨렸다. 줄잡아 1㎞를 넘는 거리를 걸어 도착해 보니 역시 인산인해. 축제장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공연이 한창이었지만, 돌아갈 걱정부터 앞섰다.

개미보다 조금 크게 보이는 출연진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볼 요량으로 객석을 헤집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 정도면 됐다싶어 일어서서 공연을 지켜보던 한 무리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때였다. '앞에 서 계시는 분들 앉아주세요. 무대가 가려져요.' 아차! 싶었다. 무대를 향해 계단식으로 좌석이 마련돼 있는데다, 일어서서 공연을 보는 이들이 많아 무심코 따라한 행동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까지 함께 있었던 터라 내 무릎은 저절로 바닥을 향했다. 그리고 나선 함께 서 있었던 이들을 둘러봤다. 웬걸,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다시 일어나기도 그렇고, 왠지 모를 민망함에 그 자리를 떴다.

평소에도 혼자 머쓱해지는 경험을 자주 한다. 단속경찰관이 없거나 무인단속 카메라가 설치돼 있지 않은 교통신호등 앞에서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은 개발이 진행중인 지역으로, 차량 통행과 횡단보도 이용자가 한산한 도로가 곳곳에 있다. 낮에도 더러 있지만, 어둠이 깔린 이후에는 교통신호를 지키는 운전자만 머쓱해 지는 광경이 쉴새없이 펼쳐진다. 모든 운전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교통신호를 무시하라는 압력은 갖가지 형태로 표출된다. 경적을 울리는 것은 기본, 중앙선을 침범하거나 없는 갓길을 만들면서까지 기어코 신호를 무시하고 만다. 날 비웃기라도 하듯.

1990년대 초·중반, '양심 냉장고(?)'라는 연예프로그램이 있었다. 차량통행이 한산한 새벽 시간대 교통신호를 지키는 운전자 등을 찾아내 '양심' 선물을 증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감동과 함께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도 마련해 줬다. 그때부터 강산이 2번 정도 바뀌었다. 안따깝지만 도로 위 사정은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그 사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등 이른바 '국격'이 높아졌지만(?)…. '양심~'시리즈라도 다시 한번 더 해야 좀 나아지려나?

인천은 국제도시로 나아가고 있는 곳이다. 지난해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과 세계은행 한국사무소가 송도에 입주하는 등 유엔 산하기구및 국제기구 사무소도 꽤 자리하고 있다. 올해는 아시안게임도 열린다. '국격'이나 '국제도시'는 거대한 인공구조물이나 거창하고 요란한 구호만으로 성취할 수 없는 지향점이다.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의식부터 자리잡아야 한다. 새해 다짐으로 '내 양심은 안녕한가?'를 제안해 본다.

/김도현 인천본사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