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노숙인 자활에 도움될 수 있는
맞춤식 강좌 마련하고
중장기 인문교양교육 상설 운영
대학 정규 교양과목 무료 청강
인성교육이나 상담 프로그램
지원하는것 반드시 필요


지난해 9월에 시작하여 12월까지 노숙인을 위한 '경기도형 탈노숙 Total-Care 사업 인문교양교육' 사업을 진행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에는 경기도지사도 참석하여 수료식까지 끝냈다. 이 사업은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이 되어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가 수원시다시서기센터의 도움을 받아 실시하였다. 교육에는 다섯 명의 교수들이 글쓰기, 철학, 예술, 체육, 명상 등을 각각 맡고 박물관 투어와 도서관 참관도 함께 진행했다. 인문학의 핵심 수업내용을 통해 노숙인들의 자활의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시간이 되고자 했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행복사회와 인문도시로서의 발전을 실질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게 하려면 '인문학의 대중화'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문학 대중화는 대학과 지자체와의 긴밀한 연계에 의해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이번 노숙인 인문교양교육 사업은 시민인문학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 이 사업을 통해 경기도와 수원시 그리고 대학이 인문학 대중화에 관심을 갖고 서로 협력하면서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워나갈 수 있게 된 것은 큰 성과라 하겠다.

대학의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는 대학 본연의 교육과 연구와 더불어 중요한 역할로 자리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지적 자산인 인문학을 지역사회와 나눌 수 있는 학문적 분위기와 교육 정책은 대단히 중요하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문학의 기본 정신은 행복한 시민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있다. 인문학 대중화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만 그것의 분명한 목적은 시민들로 하여금 인문정신이 지니고 있는 자율성과 주체성을 얻어내게 하는 데 있다. 인문학의 또 다른 목적 하나는 소외된 이웃의 얼굴을 따뜻한 마음으로 감쌀 수 있도록 배려 능력을 증진하는 데 있다. 인문학의 힘은 항상 개인의 자율과 더불어 타인에 대한 관심과 염려를 고양시키는 데 있어 왔기 때문이다.

40대에서 60대까지에 이르는 노숙인들은 한 학기 내내 늦은 저녁 시간에 자활의지를 불태우며 인문학 공부에 열정을 쏟아냈다. 젊은 학생들도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공부한다는 것이 쉽지 않는데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 희망과 삶의 의지를 갖고 공부에 임해준 그들이 존경스럽고 대단하다. 수업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그들의 얼어붙었던 마음이 열리고 자신감을 조금씩 얻어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수료식 마지막 작품발표회 때는 모두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표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대부분의 노숙인들은 대학교 강의실에서 공부를 한 경험이 없다. 게다가 열심히 수업에 참석하긴 해도 신체적 정신적 건강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아 교실이 밝은 느낌은 아니었다. 많을 때는 30여명을 훌쩍 넘기다가도 어떨 때는 20명이 채 참석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매주 목요일 20회에 걸친 수업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뭔가를 배우고 얻어가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반가웠다. 처음 시작할 때에 비하여 질문이나 웃음이 많아졌다는 사실, 주눅이 든 어깨가 조금이나마 펴지고 있다는 사실은 좋은 징조였다.

이번 노숙인 인문교양교육 사업을 통해 체계적이고 안정적이며 연속성을 구축할 수 있는 강좌 개발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문학 강좌 여러 개를 단순히 늘어 놓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맞춤식 강좌를 마련해야 한다. 경기도와 수원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충분히 공유했다고 본다. 중장기적 인문교양교육 강좌의 상설 운영과 더불어 대학의 정규 교양과목의 무료 청강, 그리고 인성교육이나 상담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일도 필요하다.

노숙인 자활 사업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자체나 시민단체도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노력을 해왔지만 그들을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일이 절대 만만치 않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도시의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의 숨은 눈물을 찾아내고 관심을 가져주는 일이야말로 '서로 마주하는' 공동체를 이루어나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