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위주 성장 벗어날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
대기업능력에 中企역량 갖추면 글로벌시장 호령
창조경제의 원년이었던 작년은 중소기업들에 큰 감동을 남기지 못했다. 오히려 많은 중소기업들이 불편함을 토로한다. 창조경제 패러다임이 시작되면 중소기업에 큰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대체로 불발탄(不發彈)에 그쳤다. 특히 기업 세무조사가 강화되면서 많은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역차별 정서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현실은 이랬지만 '경제민주화'와 같이 실체도 정확지 않은 개념을 놓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었다. 종합적으로 조금 실망스러운 한 해였지만, 우리는 지난 일 년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고자 한다. 기차를 잘 달리게 하려면 선로(線路)를 놓는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갑오년 아침, 중소기업의 희망 열차는 이제 달리고 싶다. 중소기업의 희망이란 다름 아닌,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또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소위 '성장 사다리'가 구축되어 차곡차곡 성장 통로가 열리는 상황을 말한다. 대기업이 선전하고 있지만 한국경제에서 허리가 약한 것이 단점인 상황에서,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도약하는 통로가 빨리 열려야 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과제이다. 그래서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성장 사다리'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넓어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의 구분만 있을 뿐, 진정한 의미의 '성장 사다리'는 없다. 사다리를 사이에 두고 올라온 자와 올라가지 못한 자를 구분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오르지 못한 자가 사다리에 몸을 던져 한발 한발 오르는 열정을 유인하는 것이다. 성장 사다리를 타고 오르려는 기업들의 열의에 대한 생각 없이, 사다리를 사이에 놓고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 대한 구분을 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당초 '성장 사다리'에 대한 관심을 높였던 이유가 바로 많은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을 보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 핵심은 사라지고, 오히려 중소기업에 돌아갈 혜택과 중견기업이 누릴 혜택의 비교라는 쟁점으로 번지는 것은 변질된 상황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장 사다리를 놓는 것은 중소기업들이 성장 사다리에 몸을 던져 확실하지 않은 먼 길을 떠나려는 마음과 또 올라간다는 확신이 없더라도 그 사다리를 믿어보겠다는 마음을 이끌어내는 작업임을 명심해야 한다.
성장 사다리는 '강물'과 같아야 한다. 즉, 그것은 하나의 고정된 분류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며 흐르는 실체여야 한다. 강물의 역할은 자신에 몸을 맡기는 물체들을 흘려서 결국 강을 건너게 하는 것이다. 그 역할에 충실한다면, 강물에 의해 건넌 자와 건너지 못한 자의 분포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이 성장 사다리의 구축은 그동안 대기업 위주의 성장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들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 핀란드의 노키아가 무너지는 것을 보라.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노키아가 미국 MS에 인수된 이후, 핀란드는 침착하게 창조 능력을 갖춘 벤처기업들로서 노키아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제 체질의 변화는 하루 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하이테크 벤처의 씨를 뿌렸고, 또 그들에게 열정과 욕망을 유도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도 대기업의 능력 위에 중소 부품업체들의 역량이 더해진다면 분명 글로벌 시장을 호령할 수 있다. 미국의 신흥시장 투자전문가인 루치르 샤르마 박사가 한국경제의 미래를 밝게 보는 이유도 바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보완된 상태를 예견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명확하게 판명된 성공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80년대를 풍미한 가객(歌客) 김광석의 '나무'의 노랫말이 새삼 떠오른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하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펼치려 하오." 갑오년 새해에는 청마(靑馬)의 등과 같이 믿음직한 성장 사다리가 구축되어 더 많은 중소기업들이 성장하길 기대한다.
/손동원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