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문학사의 시작점에는 '동방의 시호(詩豪)'로까지 불린 이규보(1168~1241)가 있다.

이규보는 인천에서 삼년가량 태수로 있었는데, 본인은 그 인사 발령을 좌천이라고 여길 정도로 꺼려했다.
삼면이 바다에 갇힌 기분이라며 마치 섬에 유배가는 것으로 비유했다. 그래도 이규보는 수많은 인천 관련 작품을 남겼다. 그는 또 계양도호부의 태수는 큰 정치인이 될 것이란 떠도는 말까지 믿었는데 그 믿음은 현실이 됐다.

이규보가 태수로 있을 때 인천지역이 몹시 가물어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했는데, 비를 내려달라면서 지은 제문(祭文)은 귀신을 홀릴 만큼 간절하기 그지없다. 이규보는 짧은 시간이지만 계양산과 영종도 등지를 두루 다니면서 인천의 풍속과 지형을 보여주는 시문 등 각종 작품을 많이 남겼다.

천년의 세월을 건너 이규보가 거닐던 길을 따라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 꼭 기억해야 하지만 흔적조차 사라진 공간과 역사적 사실도 많다. 이는 거꾸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깨진 거울이기도 하다.

/정진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