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중국이 먼저 그 가치를
알아보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우리의 무감각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며칠전 한 인터넷 언론매체에서는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조선족 윷놀이'를 성급(省級)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고 하며, 중국 국가무형문화재로도 등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7월에 공고된 내용이지만 우리 정부에서는 이런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 파악도 못하고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도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아리랑이나 태권도처럼 중국이 또 우리의 문화유산을 가져간다고 비난하면서 그간 우리는 무엇을 했느냐는 자성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필자는 10여년전부터 우리의 윷문화에 대해 연구를 해왔고, 이를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한 활동도 해왔던 터라서 이번 발표를 보면서 여러 감회가 들었다. 작년 10월 본 칼럼란에도 이미 윷판 암각화의 중요성이 울진반구대 암각화보다 뒤지지않다는 사실과 함께, 방치되어 있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윷판 바위그림이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채 파괴되고 있다는 점을 고발하면서 당국의 관심과 대책을 촉구한 바 있다.
중국에서 행해지는 조선족 윷놀이는 우리의 윷문화에 비교해 보면 너무나 단순하다. 우리 윷놀이에 대해 자세히 분석을 해보면, 콩윷 밤윷 쪽윷 손윷 장작윷 등의 재료가 다르고, 가락윷 종지윷으로 방식의 구별이 있으며, 자세윷 태극윷 등의 별종의 놀이가 있다. 또 건궁윷 맹인윷의 특수한 윷놀이도 있고, 이외에도 승경도 성불도 팔도유람도 등의 변형이 있다. 또 현재도 윷판을 바꾸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노는 변형들이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베링해를 건너간 우리의 고대 윷놀이는 알래스카에서 북미 남미까지 전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에 의해서 파치시나 파톨리 등으로 불리는 변형된 윷놀이의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심지어 파라과이와 볼리비아는 우리 윷과 같을 뿐만 아니라 이름조차 '윷'이라고 한다. 놀라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보도에서도 "고대 부여의 관직명에서 유래한 윷놀이는 1천500년간이나 지속돼온 우리 고유의 문화"라고 했는데, 사실 도개걸윷모의 이름이 우리 고유의 가축이름이지만 부여의 관직명에서 윷놀이가 유래했거나 천오백년 정도가 아니라 최소한 만년 이상의 역사를 갖는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민속놀이를 연구하고 있던 스튜어트 컬린이란 미국의 저명한 민속인류학자는 우리의 윷놀이를 보고 한 눈에 그가 평생을 바쳐 연구한 인디언 놀이의 기원임을 간파했고, 윷놀이가 '전세계 모든 민속놀이의 원형'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필자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윷놀이와 한반도 방방곡곡에 펼쳐져있는 윷판 암각화의 존재에 근거해서 추론해볼 때, 윷은 세계 민속놀이의 원형일 뿐 아니라, 최소한 1만여년 이전으로 상회하는 '인류 놀이의 화석'이라고 본다.
윷은 사실 놀이로 시작한 것이 아니고, 아마도 그 기원은 주술이나 점술과 관련된 구석기시대의 원시종교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윷판의 형태를 보면 달과 별의 운동을 해석한 고대천문학적 지식을 담고 있는 상징물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암각화 윷판은 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인류의 윷문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고대 한반도문명의 정수를 담고 있으며, 얼어붙은 베링해를 넘어 전 아메리카 대륙에 퍼져나간 고대 한류의 상징이다.
사실 중국이 조선족 윷놀이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고 해서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다. 이전에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하자, 중국의 네티즌들이 발끈했던 것은 속좁은 생각이다. 단오절은 분명히 중국에서 기원했지만, 강릉단오제는 대관령산신제를 중심으로 한 한국인에 의한 한국식 풍속이지, 굴원을 추모하며 용선(龍船) 경주를 하고 찹쌀떡을 먹는 중국 단오절과는 완전히 다르다. 윷놀이는 중국이나 일본 등지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윷놀이의 가치를 우리보다 더 먼저 알아보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중국의 문화재 지정을 오히려 우리의 무감각을 깨우쳐주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한다고 본다. 다행히 윷에 대해 우리는 중국이 알지 못하는 엄청난 문화의 보고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더 차원높은 윷문화운동을 전개해 나가자. 문명은 독선과 폐쇄속에서 시들고, 교류와 융합속에서 발전하는 것이다.
/임채우 수필가·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