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초장 한명자 선생은 편조법(손으로 엮기법)으로 그릇형태, 함, 화방석 외에 신변용품, 장신구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우수공예 기능인 및 신지식인을 포함해 70회에 이르는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입에 풀칠하려 시작했다 매료 40년간 작품활동
처음 내 이름 걸고 출품한 경진대회 잊지못해
제자 키울때 큰 보람… 체계적 교육 '대중화' 꿈

 
인천도호부청사를 지나 산허리를 돌아서면 왕골을 재료로 전통의 미를 구현하는 공방이 있다.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 완초장 한명자 선생이 공들여 제작한 작품이 보존되고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지는 산실이다.

완초라고도 하는 왕골은 1년생 풀로 윤기가 나고 질겨서 보관함, 돗자리, 방석 등을 제작하기에 적합한 재료이다.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강화도의 특산품 화문석은 바로 왕골을 재료로 만든 돗자리다.

왕골은 5월 하순에 심어 8월 중순에 수확한다. 수확기가 우기인 관계로 잘 건조시켜야 한다. 잘 건조된 왕골은 5일에서 10일 정도 햇볕을 쏘이는데, 왕골의 색을 바래게 하여 염색이 잘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준비된 재료는 한명자 선생의 손을 거치며 아름다운 공예품으로 탄생하게 된다. 손 빠르기로 정평이 나 있는 선생은 크기가 작은 합은 2일 정도, 큰 폐백동구리는 일주일 정도면 만들어낸다.

왕골공예는 실용성이 뛰어나 생활에서 널리 사용될 수 있는 분야이다. 여기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은 온전히 장인의 몫이다. 한명자 선생은 왕골이 주는 따뜻한 이미지에 전통의 문양을 넣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지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선생은 특히 수막새 문양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수막새에 새겨진 다양한 문양이 왕골공예에 잘 응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색을 입힘으로써 화려한 모습으로 분장되기 때문이다.

선생은 "완초는 작품의 세계가 무한합니다. 장인의 능력에 따라 매번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정도는 배워야 합니다. 제가 지금 40년 동안 작품을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작품을 만들 때면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작품이 완성되면 큰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항상 새로운 것이 나오거든요. 완초는 그만큼 다양합니다. 그게 큰 매력이죠"라고 말한다.

선생은 작품을 만들 때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왕골과 씨름한다고 말한다. 오래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 선생,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완초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정열이 녹아들어 있다.

선생이 작업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니 작은 합을 만드는데 높이가 배는 되도록 엮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의아스러운 일이지만 그 답은 금방 나왔다.

"왕골은 두 겹 처리를 합니다. 원하는 모양의 2배를 만들어 말아 집어넣는 거예요. 그렇게 해야 단단하고 오래 보존할 수 있습니다." 왕골에 문외한인 필자에게 호기심을 불어넣어 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선생은 살면서 가장 기뻤던 일로 본인의 이름을 걸고 처음으로 공예품경진대회에 나갔던 일을 꼽는다.

"먹고 살기 위해 왕골을 했어요. 가난했던 시절 남의 밑에 들어가 왕골을 엮고 그렇게 해서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았죠. 그러다가 제 이름으로 출품을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선생은 1994년 경기도로부터 우수공예기능인으로 지정되는 결실을 본다. 당시 강화는 경기도에 속해 있을 때였다.

선생은 왕골공예의 대중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9년부터 11년간 인천광역시여성복지관에서 왕골을 가르쳤고, 강화농업대학 완초공예과에서 교수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해서 배출된 제자들이 1천5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제자들을 가르쳐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을 보면 매우 즐겁죠. 그리고 그 제자들이 또 제자들을 길러낼 때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 저는 대학과 박물관 등과 연계해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체계적인 교육을 시도해 보고 싶어요. 그래야 왕골공예가 대중화될 수 있고, 길이 보존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육에 대한 선생의 의지를 살필 수 있게 해주는 말이다. 대학에 공예학과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전통공예를 가르치는 경우는 드물기에 선생의 말이 가슴 속 깊이 다가온다.

선생은 왕골공예가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이들이 왕골교육을 받으면 많이 차분해집니다. 작품을 만드는 시간에는 거기에 집중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요즈음 사회적으로 치매가 매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왕골공예는 노인들의 치매 예방에도 좋습니다. 무언가를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고, 한 작품이 완성되면 아주 기뻐들 하십니다. 그러니 정신건강에도 좋은 거지요."

요즈음 세대간의 단절을 걱정하는 시대이고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주들이 한 팀을 이루어 작품을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도 운영해 봄 직하다.

선생의 가족은 왕골 가족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부군도 10여년간 완초공예를 전수받고 있고, 자제들도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일을 거들면서 기능을 전수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맏이 최수림군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전통공예를 전공하고 있다.

"하루는 큰 애가 왕골에 옻칠을 하면 오래 보존해서 좋지 않겠냐는 거예요. 그래서 옻칠을 하면 왕골이 검해져서 안 된다고 하였죠. 그러니까 '엄마 투명한 옻칠도 있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자식한테 한방 얻어맞은 거죠." 대학에서 잘 공부하고 있는 자식에 대해 대견하게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진다.

최수림군은 문화재청에서 주최한 경진대회에서 대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어머니의 기능이 제대로 전해진 모양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완초공예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 때부터 완초를 하셨거든요. 그러니까 어머니 세대의 완초공예 그리고 현재의 저, 그리고 미래의 자식들이 할 완초를 주제로 전시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완초는 미래 세대들의 기호에 따라 변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보고 싶습니다."

평범한 풀에서 사람의 손을 통해 엮이고 거기에 우리의 색을 입히는 아름다운 왕골공예, 완초장 한명자 선생이 꿈꾸는 것처럼 왕골공예가 대학과 박물관에서 정규프로그램으로 채택되어 더욱 발전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사진/심효섭(가천박물관 학예실장, 인천광역시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