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공주 국립공원탐방처장
텐트 문을 젖히고 할머니 한 분이 얼굴을 내민다. 나이는 지긋해 보였지만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겨울 야영장에서 노인은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기에 호기심이 생긴다. 언제 누구와 왔는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도 궁금했다. 노부부가 함께 왔고, 한 달 정도 머물 예정이며 지금이 20일째라고 했다. 자연속에 있으면 몸이 덜 아파서 집에 있는 날보다 야영하는 날이 더 많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30년 전 정신적으로 큰 병을 앓았지만 캠핑을 1년정도 하면서 병이 크게 호전되었고, 팔순이 된 지금은 캠핑이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얘기다. 며칠전 팔영산국립공원 오토캠핑장에서의 에피소드이다.

팔영산 자연의 품속 평촌에는 20여동 규모의 아담한 오토캠핑장이 있다. 수천만원하는 장비를 갖추고 옆 사람 기죽이는 호사스러운 글램핑(Glamping)이나 캠핑 장비를 미리 갖추어놓고 손님을 맞는 풀옵션(Full-option)캠핑장은 아니지만, 팔영산 자락에 위치하여 트레킹과 캠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트램핑(Tramping)의 적지이다. 교통과 접근성도 좋다. 머무는 동안 바닷가 나로우주센터도 다녀오고, 벌교 여자만(汝自灣) 갯벌에서 갓 채취한 싱싱한 꼬막도 즐길 수 있다. 샤워장·전기·상하수도 등 편의시설과 예약 서비스까지 명품 야영장 요건은 다 갖추었다. 맘 편하게 며칠 머물며 작은 행복을 만들 수 있는 멋진 장소다.

야영은 인류 역사와 흐름이 같다. 원시시대는 수렵과 유목을 위한 주거수단, 전시(戰時)에는 숙영지, 오늘날은 건강을 지키고 아웃도어 레저를 즐기는 캠핑이 되었다. 시대와 용도에 따라 변화가 읽힌다.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군용 A형 텐트를 이용한 일반야영이 흔했다. 야영 사이트도 특별하게 구획되지 않았고 빈자리에 알맞게 치면 되었다. 군용모포·반합·수통 등이 기억난다. 10여년 전부터는 RV자동차를 이용한 한국식 오토캠핑이 대세다. 북미나 서유럽의 캠핑카나 트레일러를 이용한 카라반형 캠핑의 초입에 와 있다. 야영장 시설이나 장비 측면에서 역동적인 변화를 거듭한 것은 칭찬받을 만한 일이지만, 앞으로의 키워드는 '사람과 문화'이다. 사전예약, 환경에 영향이 적은 야영기술, 자연과 사람을 배려하는 에티켓 등 감성캠핑으로 진화가 요구된다.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자연에 오고 캠핑을 하는가? 요체는 즐거움과 유익함이다. 자연이 주는 맑은 공기나 깨끗한 물은 물론이고, 일등과 이등, 부(富)와 가난, 차별이 없는 편안함에서 치유와 위로를 얻는다. 자연을 찾는 이유다. 캠핑은 일과 경쟁 스트레스에 지친 도시인에게 일탈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가족과 동료간에 가족애와 우정을 강화해 준다. 물론 집 밖이 집보다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이 불편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족간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다. 캠핑의 주제어(主題語)는 대화와 하모니다.

캠핑은 언제나 즐겁고 유익하다? 페르소나(Persona) 속의 보이지 않는 다른 얼굴은 '안전'을 말하고 있다. 겨울철 캠핑의 적(敵)은 전기화재·가스질식이나 폭발사고다. 새해 벽두. 월악산에서 딱한 사고가 있었다. 안내 수칙에도 불구하고 텐트 내부를 덥히기 위해 갈탄을 피운 것이 화(禍)가 되었다. '일산화탄소 가스 중독에 의한 질식'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즐거움과 안전은 형제이다. 형(兄)격인 안전을 먼저 챙겨야 캠핑이 즐겁고 유익하다.

/나공주 국립공원탐방처장